독일
남은 오후를 맥주, 바람, 햇살과 함께 보내고도 싶습니다.
일정이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이런 여유로운, 자유로운 여행이 좋습니다.
현지 음식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식욕이 있습니다. 해외여행 중 많은 여행자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식당을 찾아 고국의 정취를 느끼고,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같은 우리 음식을 먹으면서 여행 중 소모된 에너지를 한껏 보충합니다.
요즘에는 한류 열풍으로 인하여 해외 대도시에서 한국식당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한국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많지만 가끔은 현지인이 직접 운영하는 한국식당도 보게 됩니다. 물론 맛에 있어서는 원조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한 끼를 해결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한국식당을 찾지 못할 경우가 있는데요, 이때 베트남 음식은, 내게 있어, 좋은 대안입니다.
뮌헨 중앙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연히 알게 된 꽤 괜찮은 베트남 음식점이 있습니다. 굳이 버스나 트램을 타지 않고 걸어가기에 적당한 거리. 뮌헨 사람들의 이런저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길을 따라 20분 정도 가면 가정집 분위기의 한 식당을 만나게 됩니다.
평일 낮, 그리 분비는 시간 때가 아니어서인지 가게 안은 어둡고 손님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통로를 따라 쭉 걸어 들어가 보니 통로 끝에서 마당으로 이어지는 문이 나타납니다. 문 밖의 공간은 실내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 합니다. 햇볕 잘 드는 뒷마당에는 파라솔과 함께 테이블이 꽤 여러 개 놓여 있고, 중간중간 중년의 부인들이 앉아 한가로운 점심식사를 즐기고 있습니다.
해외에 나와 구경 다닐 때 혹은 일을 할 때 조차도, 가장 반가운 동반자는 뭐니 뭐니 해도 맑은 하늘입니다. 오늘도 다행히 하늘은 푸르고 쨍쨍한 햇볕이 한낮을 지배합니다. 그 햇볕을 피해 파라솔 그늘 밑에 자리를 잡습니다. 저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긴 외국, 독일 뮌헨의 베트남식당, 그늘진 테이블과 푸른 하늘이 있는.
간간히 부는 바람을 느끼면서 가게 직원이 가져다준 메뉴판을 읽어 봅니다. 역시 ‘베트남 음식의 진리’는 쌀국수죠. 그중에서도 쇠고기 쌀국수 ‘퍼 보(phở bò)’를 주문합니다. 문득 파라솔에 찍혀 있는 반가운 상표가 보입니다. 에딩거(Edinger), 기분이 더 좋아집니다. 역시 독일은 맥주, 맥주는 ‘바이젠(weizen)’이죠. 바이젠도 주문하고 그와 곁들일 안주(?)로 프라이드 스프링롤 ‘짜죠(chả giò)’도 추가합니다.
베트남의 그 뜨거운 열대기후에서 먹는 쌀국수 맛을 떠올려 봅니다. 진한 쌀국수 국물에, 살짝 부족한 양 때문인지 아쉬움을 남기면서 금세 사라지는 쌀국수면. 하루에 한 끼 이상을 먹더라고 질리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외국음식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쌀국수가 아닐까. 그런 쌀국수를 이곳 독일에서 맛볼 생각이 하니 그 맛이 점점 궁금해집니다.
쌀국수가 나오기 전, 에딩거 생맥주를 먼저 들이킵니다. 역시 독일에서 마시는 바이젠에 또 다른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하얀색 풍부한 거품이 잔 위를 마감하고 그 아래로 오렌지빛 액체가 옅은 탄산을 내뿜으며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파울라너와 에딩거와 크롬바커, 이 모든 바이젠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드디어 나온 오늘의 메인 메뉴. 고급스러운 그릇에 아주 위생적이고 정갈해 보이는 국수 한 그릇이 소복이 담겨 있습니다. 이 정도면 맛을 보지 않아도 대략 감이 오죠. 스푼을 들어 먼저 국물 맛을 보는데 역시 현지의 맛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베트남인이 하는 베트남식당은 한국인이 하는 한국식당처럼 그 맛에 대한 믿음을 가져도 좋겠다 싶습니다.
오늘 선택의 결과에 스스로 뿌듯해하면서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벗 삼아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만끽합니다. 오후에는 독일박물관(Deutsches Museum)을 보러 가려고 하는데, 그냥 이곳에 남아서 남은 오후를 맥주, 바람, 햇살과 함께 보내고도 싶습니다. 일정이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이런 여유로운, 자유로운 여행이 좋습니다.
오늘 하루도 자유여행의 묘미를 한껏 누려봅니다.
♫ 에피소드 주제곡 ♫
▶︎ 영화 '행복을 찾아서' OST- Opening // Andrea Guerra
▶︎ https://youtu.be/Hefn8dKjgoA
▶︎ 2007년에 개봉한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오프닝 곡입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흑인 기업가 크리스 가드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죠. 기분이 좋아서, 또는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때 찾아 듣게 되는 음악이 있습니다. <행복을 찾아서>의 오프닝 곡은 내가 있어 그런 곡입니다.
“따라라 따다 다다 따라라 따따따~~~”
잔잔하게 시작하는 피아노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면 절로 기분이 살아나는 느낌. 크루아상을 먹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것처럼 이 음악도 비슷한 효용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