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입에서 ‘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세상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코 끝을 휘감는 향긋함과 입 안에 감도는 이 달달함.
맥주의 나라 독일, 그중에서도 남부에 위치한 뮌헨(München, Munich)은 역사 깊은 양조장들로 유명합니다.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 ‘뢰벤브로이켈러(Löwenbräukeller)’, ‘아우구스티너켈러(Augustiner-Keller)’와 같이 4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른바 뮌헨 3대 양조장에서 운영하는 호프집들을 시내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홀 중 하나라는 호프브로이하우스는 구시가지 내에 위치하고 접근성이 매우 좋죠.
뮌헨 여행의 시작점, 중앙역(München Hbf)에서 구시가지가 있는 마리아광장(Marienplatz) 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그 길에는 많은 사람과 자동차가 다니고, 그 길 위에 공존하는 파란색 트램도 있죠.
어딘가 새로운 세계로 안내할 것만 같은 커다란 아치형 문을 통과하면 그 안으로 많은 상점들이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를 반깁니다. 그 풍경을 따라가기 위해 이리저리 옮기는 여행자의 눈길은 바쁘기만 하죠. 세상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이는 거리 풍경이지만 이곳에 첫 발걸음을 내딛는 여행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무슨 약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는 발걸음을 조금 재촉해 봅니다. 왠지 이 길 저만치에는 나를 반겨줄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은 상상을 하며 말이죠. 가던 길을 따라 한참을 더 내려가다 보면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커다란 건축물이 눈 앞에 나타납니다.
네오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이 건물은 뮌헨시의 신시청사입니다. 높이가 85미터로 1867년부터 1909년에 걸쳐 건설되었다고 하죠. 얼핏 봐도 수 백 년은 됐을 것 같은 이 건물이 사실은 지어진 지 100년이 조금 넘은 시청사란 것은 이 도시가 주는 일종의 반전입니다. 또한 여전히 이 건물 안에서 600명 이상의 시 공무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고요.
신시청사 바로 옆에는 또 다른 커다란 문이 여행자를 맞아 줍니다. 이 문 밖에는 지금까지 보았던 풍경과는 다른 무엇이 있을 것만 같은 설렘을 안고 문을 빠져나갑니다. 물론 그 문 밖 풍경 또한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저 멀리 파라솔에 낯익은 상표가 서서히 눈에 들어옵니다.
인도 위에 있는 나무 테이블과 그 위에서 따가운 햇살과 소소한 비를 막아주는 파라솔. 몸은 아직 문 안쪽 세상에 머물고 있는데 마음은 이미 저만치 나아가고 있습니다. 파라솔 위의 그 상표, '파울라너(Paulaner)'를 좇아.
단숨에 파울라너 가게 앞 테이블에 도착하여 원래 여기가 목적지였던 양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보니 이제 곧 날이 저물려고 하는지 하늘이 뉘엿뉘엿 어두워져 갑니다.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직원의 추천을 겨우 받아 맥주를 주문합니다(사실 주문할 때는 이 맥주가 구체적으로 어떤 맥주인지는 알지 못했죠). 여기에 오늘의 안주이자 저녁 식사가 될 독일식 돈가스 슈니첼(Schnitzel)이 빠질 수 없죠.
잠시 후, 테이블 위에 놓인 독일 밀맥주 바이젠(Weizen)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켜 봅니다. 입에서 ‘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세상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코 끝을 휘감는 향긋함과 입 안에 감도는 이 달달함.
“세상에 이런 맥주 맛이 있었네.”
그동안 경험했던 맥주와는 너무도 다른 그 맛에 세상 감탄하며 행복 한 모금, 행복 또 한 모금, 그날의 행복 맥주를 마음껏 마셔 봅니다. 세상에는 기억해야 할 많은 즐거움과 기쁨이 있지만, 오늘 한 잔의 밀맥주가 가져다준 새로운 세상으로의 행복감은 더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에피소드 주제곡 ♫
▶︎ Beethoven / 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Op.27-2 ‘월광’- 3.Presto // pf : 임동혁
▶︎ https://youtu.be/CtjzTYnNDGM
▶︎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올림 다단조 작품번호 27-2는 <월광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모두 3악장으로 구성된 <월광 소나타>에서 매우 잔잔한 분위기의 1악장은 베토벤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 <월광 소나타>를 좋아한다고 하면 1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일 가능성이 매우 높죠. 반면 3악장 프레스토(Presto)는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격정적인 분위기의 곡입니다(초반부터 한참을 몰아치다가 중반부에 잠시 조용하고 느리게 진행되는 부분이 나타난 후 다시 격정적인 분위기로 복귀하면서 마무리됩니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연주를 유튜브에서 처음 봤던 그 순간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게 있어 그동안 마셨던 맥주들(카스, 클라우드, 산미구엘 등과 같은 라거류)의 맛이 <월광 소나타>의 1악장과 같이 아주 친숙한 수준이었다면, 독일에서 처음으로 맛 본 바이젠의 첫 느낌은 3악장처럼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날은 맥주 맛의 신대륙에 첫 발을 내딛은 순간으로 쭈욱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