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 엄마!"
사연을 읽던 DJ는 멘트를 잇지 못했다. 6~7초 정도 침묵이 흘렀고 아무런 곡 소개 없이 준비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DJ의 감정이 내게 이입된 것일까. 내게도 그 가슴 먹먹함이 무척이나 세게 밀려왔다.
거의 매일 듣는 라디오 음악 방송이 있다. 클래식, 팝, 샹송, 칸초네, 연주곡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 '세상의 모든 음악(세음)'. 퇴근 후 이 방송을 들으며 나는 큰 위안을 얻고 있다. 직장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분노, 섭섭함 같은 감정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킨다.
세음을 듣다 보면 아주 가끔, 고요한 순간이 이어질 때가 있다(몇 초간의 침묵이 방송사고로 인식되는 라디오 방송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순간이다). 이유는 우리의 DJ가 '울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프로그램 개편 때 PD와 작가가 다른 분들로 바뀌게 되었다. 그분들이 마지막 방송을 하는 날, 고별 멘트 읽기 시작한 DJ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목이 메어 더 이상 글을 읽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 순간 방송을 듣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DJ에게서 전파된 그 마음을 느꼈으리라.
어떤 이의 감정이 때로는 쉽게 타인에게 동화되는 경향이 있다.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특히 더 그럴 것이다. DJ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져 같이 울먹이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주요한 콘텐츠 중 하나는 청취자 사연이다. 세음 또한 청취자 사연과 함께 신청곡을 들려주거나 그 사연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려준다.
어느 청취자가 보내온 그날 사연은 이렇다.
오늘 마흔여덟 번째 생일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칠십 넘은 어머니가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해 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셔서 울음이 나네요. '사랑하는 우리 엄마' 하셨어요.
마지막 부분에서 DJ의 목소리가 살며시 떨리더니 꽤나 오랜 정막이 흘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누구도 그 상황을 설명해 주지는 않았지만,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DJ가 느꼈을 감정의 소용돌이를.
언젠가 세음에서 이런 내용을 방송한 적이 있다.
"가족 간에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중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말 중에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은,
"나한테 해 준 게 뭔데."라고 한다.
자식이 이런 말로 부모에게 상처 주는 시대, 그 어머니는 자식의 생일에 문자 메시지로 미안한 감정을 전한 것이다.
내게도 그런 어머니가 있다. 자식에게 많이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세상 많은 부모 중 한 사람이 우리 어머니다. 어머니는 가끔 내게 이런 말을 한다.
"어렸을 때 사과 하나 제대로 못 먹여 키워서..."
"엄마가 돈이 많았으면 좋은 차도 사주고..."
집에 갈 때마다 뭐 하나 더 챙겨주지 못해 안달하는 우리 어머니. 이제는 아들도 돈 있다고, 제발 그만하시라고, 앞으로는 당신을 위해 돈을 쓰시라고, 나는 돈 필요 없다고...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변함없는 우리 어머니. 이젠 제발 그러지 마세요.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어머니는 앞으로도 이전과 같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당연한 삶이라 생각하고 거기에서 더 많은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내 인생에서 큰 성공과 부는 이루지 못했지만, 이 정도 삶을 꾸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우리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가 있어 오늘의 내가 되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