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J에서 INFJ로
나는 본래 INFJ(인프제)가 아니다. 내가 지금은 나 스스로를 내향적, 직관적, 인간관계 중심적, 계획적인 사람이라고 판단하지만 과거의 나는 지금과 달랐다. 난 천성적으로 규칙이나 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유형이었지 결코 사람 관계에 이끌리거나 주변 상황을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지는 않았었다.
여기서 INFJ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MBTI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MBTI(Myers-Briggs-Type Indicator)는 간단히 말해 4개의 지표(외향-내향, 감각-직관, 사고-감정, 판단-인식)를 이용하여 개인의 성격 유형을 16개로 나누는 검사이다. 캐서린 쿡 브릭스와 딸 이저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에 개발했다. INFJ는 그 16개 유형 중 하나이다.
이전 직장에서 리더십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일반적인 교육이 하루나 이틀인데 반해 이 교육은 무려 5일 동안이나 진행되는 비교적 긴 일정의 교육이었다. 더군다나 교육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대다수의 교육생은 한국인이었고 외국에서 파견 온 직원이 몇몇 있었다. 강사는 미국인이었는데, 과거 이 교육 과정을 경험한 직원들의 전언에 의하면, 아주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다.
교육에 참여하기 전에는 단지 영어만이 유일한 걱정이었다. 영어 몰입 교육이라니, 그것도 리더십 교육을...
주제가 리더십이기 때문에 주요한 내용은 상호신뢰, 인간관계 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에는 생각의 틀을 깨야만 풀 수 있는 아주 인상적인 게임도 있었다. 문제의 세션에 들어가기 전까지 영어로 진행되는 교육이 뇌의 과부하를 유발해 약간 버겁기는 했지만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힘들지 않았다.
문제 세션의 주제는 이러했다. 나는 한 회사의 사장이다. 이 회사는 곧 부도가 나서 망할 위기에 놓여 있다. 직원들은 곧 모두 해고될 처지다. 나는 오늘 직원들 앞에서 회사의 위급한 상황을 설명하여야 한다. 최선을 다해 지금의 상황을 직원들에게 설명하고 직원들의 이해를 최대한 구하는 것이 오늘의 목표이다.
강사는 모든 교육생들에게 막대 세 개를 주었다. 그 막대는 발표를 잘한 사람들에게 주기 위한 것이었다. 차례차례로 준비된 사람부터 발표가 시작되었다. 영어로 발표하는 것이기에 영어 실력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버거운 일이 틀림없었다. 대다수는 본인의 생각을 차분하게 피력했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꽤나 곤혹스러운 순간처럼 보였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드디어 평가의 순간이 다가왔다. 우리 모두는 원형을 만들어 앉았다. 한 사람씩 일어서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한 칸씩 돌면서 해야 할 일은 이렇다.
제일 먼저 앉아 있는 사람과 ‘눈 맞춤’을 한다. 그 사람이 막대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막대를 건네고 그렇지 않으면 가벼운 목례와 함께 다음 사람 자리로 이동한다. 다시 ‘앉아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막대를 줄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렇게 막대 3개를 돌리고 원래 앉았던 자리로 돌아온다.
돌이켜 보면 가장 곤혹스러웠던 순간은 ‘눈 맞춤’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보았다. 여러 막대를 받은 자의 ‘여유 있는 눈빛’과 막대를 하나도 챙기지 못한 자의 ‘간절한 눈빛’을.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실력으로 평가하고 평가받는 것이 규칙이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간절한 눈빛’을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 결과, 나와 같은 생각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막대를 하나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반면 예닐곱 개를 손이 쥐고 있던 사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정말 뭐라고, 난 그 사람에게 막대 하나 건네지 못한 것일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문득 든 생각이 있다. 그때 그 세션의 목적이 정말 직원들 앞에서 설득력 있게 발표한 사람을 뽑아 칭찬하고자 했던 것일까? 대표로서 직원들을 다독이고 위로하기 위한 우리의 표현력을 평가하고자 했던 것일까?
혹시 그때 우리는 누가 막대를 많이 챙겼는지, 누가 막대를 하나도 받지 못했는지 주위를 살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막대를 하나도 얻지 못한 이에게, 또는 하나도 받지 못할 것 같은 이에게, 그 사람의 발표력과 상관없이 자신의 막대 하나를 기꺼이 주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주고자, 그런 의식을 일깨워주고자 함이 그 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아니었을까?
점차 온정이 메말라 가는 직장생활에서 일말의 휴머니즘이 필요하다는 것을 먼 훗날 나는 깨닫고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규칙만으로 상황을 판단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 안에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 사람을 같이 보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나는 INTJ에서 INFJ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