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원하 Jun 02. 2022

5. '미스 포메라니안 서울 진(眞)'에게

반려견 폼폼에게 보내는 아빠의 러브레터

아빠는 항상 그 말에 설렜어.


새하얀 외모와 균형 잡힌 이목구비, 그리고 아담한 체구로 늘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우리 폼폼이. 너와 같이 길거리를, 공원을 거닐 때면 주변에서 늘 들려오는 작은 속삭임들이 있어.

"(꺄르르륵)와, 너무 예쁘다. 쟤 좀 봐"

"인형인 줄 알았어. 어쩜 저래~~~"

아빠는 이런 말이 듣고 싶어 너와의 공원 산책을 자청하는지도 모르겠어.


기억해? 우리 지난달에 공원에 갔었잖아. 그날 하늘은 맑고 햇살은 쨍하고 공기는 상쾌했지. 게다가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더할 나위 없었어. 어느 벤치에 우리 둘이 한참 앉아 있었는데 난 그 시간이 정말 달았어. 우리 사이에 아무 얘기도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아무 얘기도 필요 없었던 것 같아.


너는 눈앞의 풍경과 지나다니는 사람들,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세세하게 반응하며 이리지리 두리번거렸어. 난 그런 너를 그저 바라보기도 하고,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기도 하고 그랬어. 넌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뭐가 좋았었는지 궁금하기도 해. 한 번쯤 묻고 싶었어(물론 답을 들을 수는 없겠지만).


어제와 그제, 그리고 엊그제도 그 3분짜리 동영상을 봤어. 그냥 자꾸 돌려보게 돼. 네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정이 평온해지고 세상 기분이 좋아지거든. 자연스레 미소도 짓게 되고. 많은 위안도 얻어. 널 보는 것 자체가 아빠에게는 힐링이야.

 


혹시 그거 알아? 아빠가 최근에 꽤나 힘들었다는 거. 머리가 좀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 갑자기 찾아온 뜬금없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서. 그래서 밤에 술 먹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전화로 물어보기도 하고(술 깨고 보니 완전 민폐지 뭐야. 그래도 누군가는 괜찮다고 했어. 가끔 그런 흔적도 남겨야 사람이지, 라고 하면서).


그렇게 한동안 방황하다가 책장에 꽂혀 있던 아주 오래된 시집에서 소중한 '충고'를 얻었어. 시를 읽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복잡했던 머리도 단순해지는 느낌이더라. 세월이 약이라 여기고 기다려 보려 해. 


폼폼아, 그런데 한 가지 고백할 게 있어. 사실 아빠는 집에서 '개'를 키울 의도가 전혀 없었어. 네 엄마와 오빠의 강력한 희망에 따라,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집에 강아지를 들이기로 결정했지만, 그전까지 반려견 입양은 반대했었어. 왜냐고? 그 이유는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에 나오는 반려견 이야기로 대신해 볼게.


'반려伴侶'는 동반자를 의미한다. 반伴자는 짝을 뜻하고 려侶는 벗을 뜻한다. 지금은 반려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관계는 사람마다 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길 것이고, 누군가는 생의 동반자로 여길 것이다. 나는 두 단어 다 쓰지 않는 편이다. 애완은 조금 경박하게 느껴지고, 반려는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하고 생각하면 너무 애닲다. 무슨 반려들이 이토록 자주, 먼저 떠나는가.

나에게 녀석들은 반려가 아니라 여행자에 가깝다. 새미와 이슬이도, 방울이와 깐돌이도 잠시 우리집에 왔다가 떠났거나 떠날 것이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은 함께 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2020, 문학동네, 209쪽, 212쪽


한평생을 같이하고 싶은 상대가 15년, 길어야 20년밖에 같이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반려의 의미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돼.


폼폼아, 불교에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이 있대.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는 뜻이고, 거자필반(去者必返),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는 의미래. 쉽게 말해,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다는 거지.


후에, 얼마큼 영겁이 흘러야 우리가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어. 그렇지만 막상 그때가 되면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겠지. 그때 난 여전히 사람이고 넌 여전히 동물일지도, 아니면 네가 사람이고 내가 동물일지도, 혹은 우리 모두가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우리 사이에 아주 조그마한 느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너의 곁에서 지냈었다는 느낌을,

네가 나의 곁에서 살았었다는 느낌을.


김영하 작가가 또 이런 말도 했더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와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은 결합되어 있다고.


죽음과 종말을 떠올리면 현재의 삶은 더 진하고 달콤해진다.

* 김영하, ≪보다 읽다 말하다≫, 2021, 복복서가, 95쪽


아빠는 이 문장이 참 가슴에 와닿았어. 우리 함께 이 생애 여행하는 동안 세상살이를 더 진하고 달콤하게 즐기자꾸나.


끝으로, 아빠는 무슨무슨 애견 대회가 있다면 너를 꼭 데리고 나가고 싶었어. 그리고 너에게 최고상을 안겨주고 싶기도 했고. 미모로 본다면 이 세상 그 어떤 포메라니안도 너보다 예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 그런 기회를 갖지는 못했네... 그래도 넌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빠 마음속 미스 포메라니안 서울 진(眞)이야.



사랑해, 폼폼아!

네가 우리집에 처음 온 그날부터, 한결같이.


- 너의 보호자이며 때로는 견주(犬主)인 아빠가

매거진의 이전글 4. 내 인생의 힐링음악, <Lotu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