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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line Dec 12. 2020

찧다와 찌다

엄마의 창의력!

얼마 전 포천엘 다녀왔다. 시중에서는 너무도 귀한 석청에 마늘을 찧어 버무린 후 매일 한 수저씩 먹으면 원기회복과 혈액순환 어쨌건 건강에는 최고라는 말을 들었다.


실은 두어 달 전 히말라야 석청을 소주 잔으로 반 잔 정도 마시고는 명현현상으로 토사광란을 일으켜 삼일을 누워만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늘 차갑던 몸이 따듯해지고 감기도 쉬이 걸리지 않아 면역력이 제로에 가까운 엄마 생각이 났었다. 그러나 약물이나 음식을 함부로 드실 수 없는 엄마이기에 혹여 탈이 날까 싶어 그냥 지극한 나의 효심은 가슴에 묻어 두기로 했었다.

시중에는 가짜 석청이 판을 친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복용했던 석청은 히말라야에서 직접 공수한 것이기에 마늘과 섞으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묻어두었던 효심을 꺼내기로 작정을 했다.


지금 나는 제주도의 보금자리에 있다. 늦은 오후쯤 서울에 있는 친구(예명공주님-중학교 친구이다)에게 전화가 왔다.


셀린~~이번 주말에 마늘석청 만들기로 했어. 너 언제 서울 와?

응~ 담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쯤. 왜?

아니 갑자기 석청 버무리자고 해서. 나 지금 시골집에 마늘 가지러 가는 길이야. 네 마늘은 아빠에게 말씀드려 시골 우리 집으로 가져다 놓으면 네것은 내가 만들어 올게.


친구의 아빠는 나의 아빠의 친구이시다.


전화를 끊고는 아빠에게 전화를 드렸다.

아빠~  지난번 얘기했던 마늘! 그거 지금 찧어서 00이네 집에 갖다 놔. 그럼 00 이가 가져가서 만들어 올 거야. 믹서기에 갈면 절대 안 되니까 절구에 찧어야 해.

아구~  내가 지금 밖이다. 엄마에게 연락해. 마늘은 내가 00이네 집으로 가져다 놓을 테니. 건강하니?

응~ 안 아파 알았어요. 엄마에게 전화할게.


엄마~ 지난번 얘기했던 마늘 지금 00 이가 시골집으로 가지러 가는 중이니까 얼른 까서 찧어. 그리고 비닐팩에 잘 넣어서 아빠 드리면 돼~  믹서기에 갈지 말고 꼭 절구에 찧어. 알았지?

에구머니나~ 짧은 시간에 마늘을 언제 까서 찧냐~

엄마~ 넘 많이 말고 할 수 있을 만큼 해놔. 나 전화 끊는다.


야~~ 셀린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나 어째!

친구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목소리로 다급히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무슨 일이야?

야~~ 너 엄마한테 뭐라고 말씀드린 거야? 아니 마늘을 빻아서 와야 하는데 너네 아부지가 그 많은 마늘을 찜통에 푹~ 쪄서 갖다 놓으셨어.  나 몰라. 노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마늘을 까셨겠니?

나는 웃음이 팍~ 터져 나왔다.

야~~ 지금 웃음이 나오니? 마늘을 찧어야지 어떡해 그리고 고생한 노인들은 어쩔 거야~~~

나는 친구에게 급한 대로 시중에서 파는 생마늘을 구입해 가져 가라고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한바탕 혼자 실컷 웃었다.


실은 제주도 집정리와 앞으로 처리할 문제로 몸이 버텨 내질 못 할 정도의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서울로 출발하던 날 공항에서 공황장애로 쓰러졌었다. 그리고 오전엔 링거까지 맞고 올만큼 비실대고 비행기를 두 대나 그냥 보낸 사람이 아닌냥 말이다.


글을 마치려고 하는 이 순간 나의 부모님이 괜스레 짠해지는 느낌이다. 아빠는 이제 보청기로도 잘 들리지 않고, 엄마는 여전히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본인이 느끼고 생각한 대로만 살고 있으니.

어찌 되었건 나의 부모님이 갖고 계신 창의력?에 박수를 보내본다. 언어전달의 무서움?과 의미를 느낀 씁쓸한 박장대소 사건이었다. 나에겐 부모님에 대한 또 하나의 기억의 더께가 쌓였다.


엄마~~ 마늘은 찜통에 찌는 게 아니고 절구에 찧는 거라니까!



이 글은 어제 저녁 쓰다가 그냥 잠이 들어 버려 오늘 발행한다. 지금 나의 몸은 많이 나아졌다.  


보고픈 나의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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