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자연을 좋아하셨다. 특히 꽃들을. 어린 시절 나의 집은 사계절이 꽃으로 덮여 있었다. 마당의 작은 화단은 시멘트 벽돌로 네모지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 안엔 키가 큰 빨간 칸나, 꿀을 쪽쪽 빨아먹던 사루비아, 꽃에 담긴 전설을 얘기하던 백일홍 그리고 벽돌 구멍 안은 작고 여린 채송화가. 그리고 뒤뜰로 가는 길은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가득했으며, 뒤뜰엔 작은 밭은 만들어 온갖 채소를 심어 반찬을 만들어 주시던 그 쓰러져 가던 흙벽돌집! 어린 나는 도라지 꽃이 필 때면 보라색과 흰색이 꽃몽오리가 피기도 전에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는 것을 좋아했었다. 꽃이 피기도 전에 내가 다 터트려 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꽃들에게 참 미안하다.) 그리고 내 키보다 훨씬 큰 해바라기가 익어 고개를 숙이면 그 씨앗을 말려 겨울엔 온 가족이 다람쥐가 되기 일 수였었다. 또한 코스모스 더미는 나의 공간 중 최애 공간이었다. 코스모스 사이에 앉으면 그 여린 잎사귀들은 나의 팔과 다리를 간질거리게 하여 벅벅 긁으면서도 그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바람에 일렁이는 하늘의 모습은 나만의 꿈의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수 천 개의 메르소나를 지니고 있다". - - 구스타브 융
페르소나란 사전적 의미로는 '개인이 사회생활 속에서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지 않기 위해 겉으로 드러내는, 자신의 본성과는 다른 태도나 성격. 사회의 규범과 관습을 내면화한 것임.'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우리는 삶에 있어 각기 다른 상황에 맞닿았을 때마다 그 상황에 맞는 얼굴을 나타낸다. 즉 본래의 성격이 아닌 때에 따라 중국의 경극에서 보이는 수많은 얼굴이 상황에 맞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관심과 사회질서 또는 예의라는 것에 있어 훈육된 것일 수 있으나 어찌 생각하면 살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는 것일 수도 또는 생존을 위한 내재되어 있는 본능적 필수요소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든다. 나의 나쁜 습관 중 하나가 바로 늘 누군가에게 조금의 발목을 잡힐 만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하며 반듯하고 완벽한 인간으로 각인되도록 노력하려는 것이다. 관계에 있어 조금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책하던 그 버릇은 그냥 나의 발목을 잡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 버렸다. 어찌 보면 페르소나의 희생자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뒤돌아 보니 페르소나란 작게는 개인에겐 도덕적 관념을 개인 삶(관계의 안정화)의 질을 한층 건강하게 만들어 만족감을 느끼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으며, 크게는 사회를 안정화시키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거짓과 악의에 가든 자신의 내면을 선이라는 가면을 만들어 내면을 가리는 도구가 될 수도 있기에 쉽게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자화상/척 클로스/259x213.3cm/oil on canvas/2000/개인 소장>
지금 뒤돌아본 엄마는 낡은 관습과 관념의 희생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재주와 솜씨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식견 그래서 시골에서 살아가는 것이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동네 아주머니들과는 말을 잘하지 않았었다.(한 가지 단점이라면 엄마는 말재주가 없었다. 생각이 곧 말이 되어버리는.) 아마도 제대로 된 교육(검정고시로 중졸)을 받았거나 유럽 어딘가에서 살았다면 코코샤넬을 능가하는 인물이 되기에 충분했으며, 평소 말이 없던 형부는 장례식장 한쪽 구석에서 안치실을 바라보며 "처재 장모님이 남자로 태어났었다면 분명 한 건하셨을 거야! 그렇지?" 그 씁쓸한 말엔 나의 아빠에 대한 보이지 않는 원망? 이 담겨있었다. 하늘은 높았다. 하얀 구름과 대기에서 쏟아지는 볕 좋은 태양 그리고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그곳에서 나는 생각했다. 엄마는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얼마 전 사망한 척 클로스는 장애를 가진 미국 화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퍼 리얼리즘(극사실화)의 대부가 되었다. 그에겐 그의 자화상에서 보이듯 많은 상처와 희망 그리고 적당한 페르소나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화가의 자화상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도 또 하나의 아주 커다란 보이지 않는 상흔이 남게 되었다. 그것 또한 나임을 다시 한번 자각하며 나의 실수 그리고 상처를 조금 더 보듬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아직도 엄마의 살냄가가 코끝에 가득하다.
독자 여러분께 자주 글을 올리지 못 함에 대한 인사를 드립니다. 엄마께서 병환중이시던 1월부터 8월까지 개인적으로 많은 방황과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힘들었습니다. 빨리 딛고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이 나오기 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난독증과 집중력 저하가 다시 발병해 현재 치료중입니다. 곧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건강한 가을 되시길 사랑하는 독자님들 개인개인께 소망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