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나의 독자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라 생각된다. 수십 번씩 돌려볼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바로 <맘마미아 시리즈>이다. 온몸을 저절로 흔들게 하는 음악과 함께 순수해 보이는 등장인물들 그리고 푸른 바다와 상상 이상의 스토리는 나의 내면에 숨 쉬고 있던 감정적 표현의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흥이 난다고 춤을 추거나 노래 또한 큰소리하는 행위가 어색하며 하고 싶은 말들은 꿀꺽 삼키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지려 노력 중이다.) 영화 장면 중 로라(Mery Streep)이 피어스 브로스넌을 향해 부르는 노래가 있다.
The winner take in all. 승자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우리네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결과는 과연 그럴까?
<The Card Palyer/107x136cm/oil on canvas/1999>
어두운 듯 보이는 공간을 비추는 전등은 우리가 상상했던 빛의 반짝이고 환한 느낌과 달리 단지 '등'이라는 사물에 그칠 만큼 그림에서 주체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그림 속의 공간은 평면성을 추구한다. 또한 두 남자는 지금 카드놀이에 심취해 있다. 모자를 쓴 남자는 초록색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으며, 상대 남자는 나무 위에 가죽을 씌운 못질이 드러난 의자에 앉아 있다. 그리고 벽은 초록 의자와 대비를 이루듯 반대쪽 윗부분에 칠해져 있으며, 담배를 입에 물고 손에는 빨간 카드를 든 남자의 반대편에는 빨간 커튼이 반쯤 열려 있어 그림은 색의 대비를 통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자아내고 있다. 빨강과 초록 그리고 브라운 계열의 단조로운 색을 사용한 그림은 제목과는 달리 공기가 적당히 들어간 말랑말랑한 풍선의 단면처럼 평면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입체감 즉 볼륨을 자아내는 특징이 있다. 그림에서 초록은 봄 즉 발생하는 것. 다시 말해 힘을 의미한다. 반면 붉은색 즉 빨강은 즐거움과 행운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권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총체적 의미를 부여한다면 카드놀이를 하는 그림 속엔 사기꾼이 둘이나 모였으니 상대의 트릭을 얼마나 빨리, 많이 감지하는 감각 즉 '촉'이란 것이 뛰어난 자가 승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림 속 색의 대비로 보아서 비등한 실력을 갖춘 거기서 거기 그래 봤자 당신들은 사기꾼이야라고 화가는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면 빨간 카드를 들고 있는 남자가 앉아 있는 의자 뒤쪽으로 숨겨 놓은 카드가 삐죽하고 뛰어나와 보인다. Tick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승리하지 못한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의 카드게임에 보이지 않는 Rule인 것일까?
누군가는 뻔히 아는 속임수를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마음의 눈엔 보이지 않는 경우가 삶 속엔 허다하다. 지나고 난 후에야 그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또는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서일까? 삶은 언제나 양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결과 속에서도 잃은 것이 있다면 또 얻는 것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 아는 말이지만 막상 현실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때면 가뜩이나 주눅들은 자존감이란 녀석은 바닥을 치고는 딛고 일어나기까지 오랜 세월 또는 영영 그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책임을 지어야 하고 또는 생명이 붙어 있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부득부득 살아가야 한다.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보니 하나를 잃으면 나에겐 더 이상 가진 것도 남은 것도 없으니 혹시 가져갈 것이 있다면 다 가져가세요.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또는 나의 운명 속에 절대 나타나지 말고 꺼져 버려~라고 더 큰 소리를 치게 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아직은 살아야 하기에.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행위를 하는 다른 이유는 트릭을 눈치챌 정도로 촉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작게 남은 것까지 잃지 않기 위해 움켜쥐고 있는 그 힘이 여간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차리리 다시 시작하는 편이 홀가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승자가 되어 다 가졌다면 그 순간은 마약에 취한 듯 호르몬은 분비가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 움켜잡으려 할 것이다. 나는 여러 경험을 통해 승자는 되지 못했다. 그러나 나를 제대로 지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거 줄 테니 내 앞에서, 내 남은 인생과 삶 속에서 꺼져!라고 큰소리로 말할 수 있는. 그리고 때론 침묵으로 일관할 수 있는 힘! 그것은 많은 것을 잃고 난 이후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었다.
누군가 말했었다. 셀린! 넌 톰과 제리에서 톰이야. 늘 자신이 똑똑한 척하지만 늘 제리한테 당하기 때문이다. 그래! 너의 말 잊지 않을게. 그러나 적어도 난 승리를 위해 카드를 숨겨 놓는 짓은 하지 않아.
페르난도 볼테르(Fernando Botero Angulo1932-현재)는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비싼 그림을 제작하는 화가로 주로 패러디 작품 즉 고대부터 제작된 수'많은 명화들을 현대화시켜 사회의 모순에 대한 메시지를 풍자하는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을 지금껏 마주하지 않은 이는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그림 또한 세잔의 그림을 모티브 한 그림이다
<폴 세잔/카드놀이하는사람들/47x56cm/oil on canvas/1892~96/파리오르세미술관/
풍선처럼 터질 듯한 풍만함은 보테로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많은 사람들은 보테로의 그림을 보고 뚱뚱한 그림이라 말하지만 색감과 볼륨을 중시하다 보니 이런 풍만함이 강조된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또한 볼륨을 중요시 여겼던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영감은 얻은 것이라고자신의 그림 특징에 대해 언급했다. 채플린이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그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다. 볼테르가 펼친 화면의 세상이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