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매생이국에 탄수화물을 우걱 넣어 봤지만 입안은 돌 씹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알려 준다.
지난 11월 칼림바를 구매했다. 띵~딩~ 울리는 선율과 무엇보다 크기가 작아 언제든 내 곁에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곰 세 마리이다. 구입 당시 보내준 악보 속 그대로. 무거운 몸과 예민한 정신의 원인을 찾지 못하던 중 마침 땡스타그램 친구인 음악 선생님께 댓글을 달았더니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는 DM이 날아왔다. "지브리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요." 그렇게 나는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반 동안 인터넷으로 연주를 배우기로 했다. 나에게 음악은 듣는 것은 행복! 연주는 수학 문제 풀기(어렸을 때부터 음악시간을 싫어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경제분야와 이과 쪽은 지금도 뭔 소린지)와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의 아이들은 여러 악기를 연주할 줄 안다는 것이다.
2월부터는 영어회화도 시작한다. 일주일 한번 같은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 어버버버~~ 쏼라쫠라 할 예정이다.
느긋해졌던 삶을 조금은 단정하게 하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도 나와 내가 놀고 즐길 수 있는 놀이가 필요했고(난 혼자 놀기가 너무 좋다. 아마 평생~) 뇌가 조금은 정상일 때 마무리 짓고 싶은 것이 바로 영어회화였다.
여행 또는 출장으로든 조금 더 자유롭고 싶다. 그리고 텅 빈 맘을 채울 그리고 맘이 텅 비었음을 느낄 여유조차 없도록 움직이고 싶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는 책을 몇 년 전 읽으며 여유도 좋지만 저자는 자신만을 책임지면 되고 책임을 질 능력(그것이 무엇이든 간에)이 있으니 쉬엄쉬엄 삶을 마주해도 되겠지만 난 그와는 다르다.
온전히 책임져야 할 아이가 둘. 그리고 지치고 상처투성이인 몸이 있다. 그리고 내 사랑 감자도 있다.
이런 나는 몇 년 동안 참 게을렀다. 아니 삶이 겁나 도망만치며 살았다. 난 이제 나를 위해 또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내세울 것도 없고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그런 나라도 내가 사랑해야 하니까."
네덜란드의 꽃밭/빈센트반고흐/Oil on Canvas/48.9x66cm/1883/워싱턴국립미술관U.S.A.>
고흐의 초, 중기 그림이다. 시원하고 간결한 구도는 광활한 땅으로 인해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꽃의 종류와 색에 따라 나뉜 꽃밭은 작은 색 덩어리와 같이 펼쳐져 뒤편에 자리한 낡고 어두운 집이 지닌 색과의 대비는 한껏 안정감을 유도한다. 고흐의 원근법에 대한 시도와 색의 대비에 대한 열정 또한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고흐가 그린 첫 번째 정원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고흐는 그림을 제작 후 브레다로 이사하자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림을 고물상에게 판매하였고 다시 고물상의 손을 거쳐 여러 곳을 전전하다 1983년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구입(1955)하였던 폴 멜른이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기증하면서 세상에 얼굴을 선 보인 작품이다
고흐의 그림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여러 경로와 사연을 지니게 되었듯 우리에게도 많은 사연과 선택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스토리가 있기에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란 생각과 낡은 집이란 현실의 어둠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키우는 농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교차하는 아침이다.
영화 Loving vincent 2016 중에서. 나는 이 영화만큼 고흐를 잘 나타낸 작품을 지금껏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실제 고흐는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는 달리 출세욕과 성공욕이 매우 강하며 고집이 세서 타협이란 것이 힘든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주치의였던 가셰 박사조차 질투하였던 천재였다. 가셰 박사가 그를 제대로 치료하였다면 현재 우리는 그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을'것이다. 그의 타협을 모르던 고집스러움은 당시 고흐 자신을 힘들게 하였으나 지금의 우리에겐 큰 의미를 부여하였기 때문에 고흐에게 무어라 인사를 전해야 할지도 생각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