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제사를 모시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딸이 노래를 듣는다. 딸은 자신의 세대와 달리 오래된 노래를 듣는 것을 매우 선호한다. '너의 얘길 들었어. 너는 벌써 30평에 사는구나. 난 매일 라면만 먹어 나일 먹어도 입맛이 안 변해 I'm Fine thank you and you' 노래를 듣는 순간 문득 떠 오른 얼굴이 있었다. 나의 첫사랑. 그 녀석.
고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인가? 그 녀석을 처음 만났다. 세련되었지만 말수가 거의 없는 그리고 183cm라는 큰 키에 연예인 뺨치게 잘 생긴 외모 그러나 난 그 녀석에게 설렌다는 감정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참고로 녀석의 별명은 원시인이었다. 이유는 몸에 털이 많아서이다. 이 별명은 우리가 지은 것이 아니고 녀석의 친구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나의 친구와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쩌다 얼굴을 알게 되었다. 이후 우린 친구라는 이름으로 자주 만나 수다를 떨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 갔었다. 녀석은 대학에 입학 후 특수부대로 입대를 하였다. 싱거워 빠진 녀석은 입대를 하기 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나에게 빨간 앙고라 벙어리장갑(삐에르 가르댕)을 흰 종이에 싸서는 선물하였다. "너 나한테 이걸 왜 선물하니?" "음흠 그냥 너 손 차가울까 봐" 그리고 우린 편지를 주고받았다. 늘 감각 있던 녀석은 편지지가 아닌 편지 봉투를 뜯어 대각선의 모양으로 자신의 미래와 세상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써서 보내고는 했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는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다. 녀석이 나를 매우 좋아했었다는 것을. 그래서 힘들게 한 첫 알바비로 나에게 선물을 한 것이라는 사실 또한 말이다. 녀석은 재대를 하였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우리가 처음 알고 지내고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하는 결혼 준비 시작부터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날은 비가 엄청 쏟아졌다. 종로 3가에서 강변 터미널까지 전철 안에서 울고 또 울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주황색 공중전화기가 눈에 띄었다. 왜 인지 모르겠으나 순간 녀석의 얼굴이 떠 올랐다. 나는 무작정 동전을 넣었다. 녀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계속 울었다."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 0시쯤에 도착해" "그래, 알았어" 당시 나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큰 키의 녀석은 변함없는 얼굴로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울기만 하자 녀석은 나를 근처 카페에 데리고 가서는 "그럼 결혼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리고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각자 살기 바빠 연락을 할 시간도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잊혀 가던 어느 날 우연히 녀석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들은 다 큰 어른이 되어 있었다.(생장속도로만 말이다) 그리고 가정이라는 이름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우린 여전히 좋은 친구였다. 늘 그렇듯 녀석은 변한 게 없었다. 외모는 오히려 더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야~ 너 하난도 안 변했다." "오호~칭찬으로 듣겠어" 라며 첫 인사를 나누고는 나의 차에 녀석이 올라탔다. 가까운 카페로 이동하는 사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바로 10cm의 'I'm Fine thank you and you' 마치 우리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노래였다. 나는 푹하고 웃음이 나왔지만, 녀석은 "야~ 노래가 왜 이래? 내가 너무 슬퍼지잖아" 맞았다. 녀석은 자신의 문제가 아닌 친가의 문제로 인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늦은 결혼을 하여 자신보다 훨씬 나이 어린 아내에게도,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것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 또한 물질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정서적으로는 이미 피폐해져 있던 순간이라서인지 오히려 가족들과 함께하는 녀석이 모습이 마냥 부러웠었다. 첫 단추부터 삐뚤어진 나의 선택 그리고 난 혼자가 된 상태였다. 자의 반 타의 반 아닌 내가 선택한 것이 맞다.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행복한가? 자유는 얻었으나 아직도 내 뒤처리도 제대로 못하는 헛똑똑이인 것은 분명하다.
<Love Messenger/Alexandre Cabanel/80.6cmx47.6cm/oil on canvas/1883/개인소장/프랑스>
노래를 들으며 딸에게 노래 이야기를 해줬다. 딸은 말한다. "엄마! 난 엄마가 참 부럽다. 엄마는 늘 좋은 친구들이 많잖아. 엄마가 아플 때면 집으로 찾아와 나까지 챙기는 이모들과 시골 동네엔 언제나 부르면 엄마를 찾아오는 동네 친구들까지. 그건 엄마가 좋은 사람이라는 거잖아." 어느 날 중학교 동창인 친구가 한 말이 있다 . "야 나 오늘 세수도 안 하고 나왔다. 헤벌쭉~~", "00아 넌 천년을 세수 안 해도 이뻐! 왠 줄 아니? 넌 의리가 있고 정이 많아 그리고 늘 솔직해 그런 게 예쁜 거야. 얼굴 몸매 좋은 사람들보다 나는 너의 그런 모습이 너무 좋다." 생각해 보니 이 말이 좋은 말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딸의 말을 듣고는 처져있던 어깨가 순간 조금은 올라갔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친구들 속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도 늘어나지만 그래도 친구는 참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겐 반짝이고 설레었어야 하는 첫사랑은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지금 돌아보니 엄마는 늘 나라는 사람에게 감정을 익히는 연습을 시키지 않으신 것 같다. 나는 태생적으로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딱 막아 버렸던 것이다,(지금도 톰보이 선호한다.) 그래서 이 나이에도 감정연습으로 인해 힘들고 사랑이란 감정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 부드러움, 사랑스러움과 같은 좋은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추하고 악한 감정이 고스란히 내 몸에 남아있는 것이다. 엄마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감정의 전이는 이토록 위험함 임을 글을 쓰며 다시금 느낀다. 다행히 나의 아이들은 좋은 감정에 대한 표현함에 있어 서툴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의 아이들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