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엄마는 나의 집 거실에 환자용 침대를 소파 옆에 두고 누워계셨다. 아빠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밤마다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고 어루만지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섬망은 심해졌고 그럴 때면 엄마는 아기 같은 얼굴로 환히 웃고 있으셨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코끝을 타고 내려오던 눈물의 의미는 너무도 복잡했다. 엄마의 인생 중 가장 긴 시간을 함께 했던 나였기에 다른 가족들도 아픔의 시간이었지만 나에겐 엄마에게 소리 지르고 윽박질렀던 모든 시간들이 정말 영화처럼 스쳐 가슴에 콱 꽂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의 죄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잠깐 동안이지만 엄마가 나를 알아보는 순간이 있었다. 엄마의 손과 얼굴을 쓰다듬던 나의 손을 엄마는 갑자기 꼭 잡으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바로 "내 사랑하는 이쁜 딸! 사느냐고 참 힘들었지. 앞으로는 너무 애쓰지 마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말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전 처럼 너무 많은 걱정을 하지는 않기로 했지만 내가 애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연이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해에도 엄마와 함께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너무도 사무치게 보고 싶네"
<Looking through the Bushes/빌리디아티스트/실크스크린/No23_180/개인소장Celine>
요즘 힘들 때면 듣는 노래가 있다. 바로 포레스텔라가 부른 <바람이 건네준 말>이다. 감자와 산책을 나설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이어폰에서는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살아있기에 모든 힘을 다해 살아가라'는 가사에 어떻게 힘을 내라는 거야. 난 지금 오른팔이 아파 컵 하나를 제대로 들지 못해도 병원을 가질 못하는 바보 같은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데. 억울했다. 내가 그토록 미친 듯 살아왔던 시간들이 겨우 이 정도라니 하고 말이다. 그리고 자책했다. 엄마에게는 힘든 얘기는 절대 하지 않으며 화라고는 낼 줄 모르고 늘 조용히 대화로 일이나 사건을 해결하는 차분한 성격으로 대학을 졸업도 하기도 전 큐레이터로 전속작가로 스스로 자리를 잡아 너무도 행복하다는 말만을 하는 아들에게 그리고 멀리 그 추위 속에서 혼자 삶을 살아가는 대견한 딸에게 말이다. 이것 밖에 안되는 엄마라서, 미안해~~
기댈 곳은 엄마라는 존재인 나뿐인 나의 두 아이를 위해 또 애를 쓰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지금도 막막하기만 하다.
그가 집을 떠난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난여름 집 대청소 때 쓰레기 더미 속에 그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가 언젠가 나에게 선물했던 금으로 만든 장미 한 송이. 그것이 어디 구석에 있다 튀어나온 것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장미를 거실 한켠에 꼽아 두었다. 지금은 추억이자 상처이지만 그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가끔 그에게 연락을 한다. 명절 때라던가 필요한 물건이 고가일 경우에 말이다. 지금이라도 자신에게 있어 유일한 무기(?)인 자본의 힘(?)으로 아이들과 연락을 한다. 씁쓸하지만 그렇게라도 서로의 안부와 목소리를 들으며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은 아이들이 평생 그를보지 않을 거라 나는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새해 독자님들께 너무 애쓰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쉽지은 않겠지만 우리 그렇게 한 번 살아보도록 노력 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