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line Aug 07. 2023

너를 정리하는 법.

미니멀 아트(Minimal Art)에 대하여.

태국은 최고의 광고제작국이다. 정부나 기업 또는 광고주의 관여가 전혀 없기에 광고제작자는 자신의 창의력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전 세계 광고 관련 상을 휩쓸 만큼 영향력이 대단하며 30초 이내에 끝내는 우리의 광고와 달리 10여분이 넘는 광고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태국영화 <너를 정리하는 법/2020/나와폰 탐롱라타나릿 감독>를 처음 봤을  반짝이던 광고들과 달리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보는 힐링 영화가 되어 버렸다. 버리고 치우고 정리하고.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하나하나엔 손라는 것이 묻어 있다. 이것은 추억과 기억이 담긴 것이라는 증거이다. 이러한 시간이 머물러 있는 물건을 나와 분리시켜야 할 때 드는 감정은 아쉬움도 있지만 개운함도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과거를 붙들고 자책하는 일이 사라지며 물건에 필요 이상의 감정을 소모할 필요가 없기에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 너를 정리하는 법 중에서

미니멀 아트(Minimal Art)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나타났다가 1960년대 정점에 이른 미술사조로 작가의 감정과 주관이 지배적인 추상표현주의에 반하여 최소한의 조형 수단을 사용하여 극도의 몰개성을 지향한다. 이에 따라 차가운 미술(Cool Art), 환원적 미술, 오브제 아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으나, 현재는 미니멀 아트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되어 버렸다. 최소한의 재료를 사용하여 극소화의 표현 즉 물질적인 최소한이라는 것을 극대화하는 미술로 재현된 형상과 환영적인 회화의 가상공간을 거부하고 미니멀 조각은 재현된 형상이나 대좌(받침대)를 배제함으로써 작품을 하나의 오브제로 간주한다.(세계미술용어대사전/월간미술 참조)


<레이드메이드 샘 Fountain/뒤샹/뉴욕독립미술가협회전시출품작1917/이 작품을 전시한 이후 개념미술이 등장하게 되었다>

미니멀 아트의 제작과정에는 작가의 개성의 흔적이나 손질이 가해지지 않으며 작가의 계산된 스케치와 수치에 따라 공장에서 주문 생산된 작품을 전시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미니멀 아트에서 어떤 것을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여야 하는가라는 숙제가 남아 있을 것이다. 회회 위주였던 1916년 뒤샹이 완전한 공산품인 변기를 레이드메이드 '샘'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했을 때 평론가들로 부터 지탄을 받았으나 현재라는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많은 생각을 던진다. 미니멀 아트 또한 뒤샹의 샘과 동일한 맥락을 찾는다면 공산품이라는 것이다. 차이점은 뒤샹은 완전체인 공장의 생산물을 사용하였으나 미니멀 아트는 작가의 수학적이고 치밀하게 계산된 작품 공장에서 생산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Stack-쌓아올리기시리즈 중에서/도널드저드>
작품은 작품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있는 공간도 작품이다.
- 도널드 저드


 미니멀 아트 속에서 계산되고 알 수 없는 형형색색의 많은 조각은 관람 시점의 각도와 높낮이에 따라 물질이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도로 절제되어 있으나 그 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미니멀 아트의 선두주자였던 도널드 저드(Donald Judd1928-1994)의 작품을 보면 앞의 내용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던 곳은 영국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술관에서였다. 같은 길이와 폭의 초록색의 플라스틱이 벽에 위에서 아래로 붙어 있었다. 그때는 미술을 전공하기 전이라 '음흠~ 이것도 예술이라고?' 하며 무심히 지나쳐 버렸었다. 미술사를 전공 후 다시 만난 저드의 작품은 새롭게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본만큼 안다라는 말이 실감되었었다. 종전의 작품들은 캔버스 안에서 해석해야 할 의미를 찾았다면 미니멀 아트는 그 의미를 형태 그대로인 외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 공적인 공간(작품이 전시, 설치된 공간 등)에서 관람객의 경험을 유도함으로써 실제 공간 속에 관람자에게 역할을 부여한다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작품은 작가만의 의도를 찾는 것이 아닌 관람자가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 주체자는 삶의 경험이나 기억 등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며 사고를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니멀 아트는 미국의 대표적인 유대인 미술평론가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1909-1994)에게 비예술이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형태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린버그는 전통적 회화와 미국의 정치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평론을 했기에 나는 그의 이론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미니멀 아트는 화려하게 캠버스를 가득 채운 이전의 미술과 달리 극단적인 재료와 표현은 명상과 같은 효과를 자아내 특이성에  관람자에게 매료된다는 점이 나에겐 긍정적인 편이다.

Stack시리즈중에서/도널드저드

영화 '너를 정리하는 법'에는 추억에 잠기지 말 것 등을 말하며 지난 일에 대한 감정에 연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물건을 정리한 후  삶의 공간이 확보되면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그러한 의미에 있어 미니멀 라이프는 지구의 환경적인 측면도 중요하겠지만 그 사상적 측면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물의 본질을 보고 느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커버사진/펠트연작/1969/로버트 모리슨

작년 여름 생활공간을 옮기며 많은 것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나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후 참 부질없는 것들을 끌어안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홀가분했다. 몸과 마음 모두. 이후 나의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집을 나설 때도, 들어설 때도 정리된 물건과 휑한 공간에 몸을 담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한 일이지 깨달았다. 어쩌다 새로운 물건이 집을 차지할 때면 이전의 물건 중 무언가를 처리한 후 들인다. 그렇게 나에게 필요하며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으며 생활한다는 것이 가볍다. 우리가 깨끗이 정리된 호텔에 들어설 때 마주하는 풍경을 생각해 보자. 필요한 것들만 있는 그 공간은 쉼터가 되어준다.

미니멀 아트 또한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불필요한 조형적 장식물을 덜어내고 본질만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도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수렁 같은 생각에 빠지는 시간보다는 본질에 집중하다 보면 은 명쾌해진다. 사회가 발전하고 인류가 진화하며 인간이 만든 복잡한 절차나 관계에 발이 묶일 때기 있다. 이럴 때 일수록 미니멀 아트가 추구했던 그 의미를 되새겨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깝게 또는 더 낯설게. 입체적 사고로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