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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line Aug 01. 2023

숨에 대하여.

추상작가 이형곤

현재 무위의 풍경(A Landscape of Wu-wei)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는 이형곤 작가의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은 어릴 적 장독대에 놓여 있던 장항아리 즉 숨 쉬는 항아리가 떠 오른다. 따스한 봄날엔 나비가 날아와 한참을 놀다 쉬어가기도 하고, 뜨거운 여름날엔 태양이 뿜어내는 열기를 말없이 다 받으며 쏟아지는 장맛비와 소나기까지 견뎌야 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숨 쉬는 장독대는 고집이 세다는 생각이 든다. 견디지 못할 것이면 터져버리면 그만일 것을 기어이 자신을 지키고 말기 때문이다. 가을날엔 어떤가? 해지는 저녁노을이 비춰 때론 낭만을 자아 노스탤지어의 길을 만들며 한 겨울 동장군의 횡포에게 말한다. 그래 네가 아무리 흔들어도 나는 숨을 쉬는 항아라지. 끄떡없어 라며 무언의 대항을 펼친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뚜껑의 모습은 어떤가? 상황에 따라 변하거나 달라질 수 있는 인간과 달리 있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눈을 맞이한다. 동그랗게 때론 찌그러진 모습 그대로. 이런 면에선 인간보다 참 솔직하다. 변화무쌍한 인간이 유형의 형태로 만든 많은 것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마주했던 나의 장독대 이야기이다. 


작가 이형곤의 작품이 그러하다. 강하며 굵은 우직함 그리고 정이 많음이 확인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은 작가 스스로와 닮은꼴이다. 그의 작품에서 장독대가 떠 오른 것은 작품의 질감, 재료, 구성 등 많은 요소들의 영향이 크다. 테라코타 작업을 마치고 유약을 발라 항아리나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마지막 작업을 하듯 말이다. 그의 작품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유광이라는 것이다. 캔버스를 보호하듯 마지막에 광처리를 하고 있다.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 속에서 네안다르탈인이나 호모사피엔스였을 당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안전이라는 것이 가장 필요했다. 거대한 자연의 재해, 힘으로 부터, 더 강력한 무리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그림 속 유광처리는 캔버스를 보호하고 더 빛나게 하는 느낌을 자아낸다. 태초의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그랬듯이. 숨을 쉬기 위해! 작품은 우리에게 숨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걱정 말아요 당신은 안전합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하는 재료가 '옻'이라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옻이란 액막이용으로 사용했던 물질이다. 나무에 옻칠을 하면 천년을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으며 이롭지 못한 것들을 막아주는 물질로 사용되었다. 그의 작품이 그렇다. 빛나는 광(光)은 자신을 보호 또는 나는 흔들림이 없다는 작가의 사상을 얕볼 수도 있으며, 부정(不淨)으로 부터의 보호로 시작되어 강건한 의지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비구상 즉 추상미술을 하고 있는 한국의 중진작가 중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가이다. 내면은 강하며, 외적으로는 차분히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들이 바로 나의 어린 시절 마주했던 그 장항아리와 같은 모습이었다.

작품의 구성요소는 아주 간결하다. 배경과 대비되는 굵은 한 줄기의 선 또는 정형적인 기호? 와 같은 것들이다. 어찌 보면 블랙 페인팅(Black Painting) 이라 불리었던 프랭크 스텔라가 시도했던 계산된 선의 모양과도 흡사하다. 그러나 스텔라의 작품과 달리 이형곤이 사용하는 굵고 짧은 선은 마침표와 같다는 생각이다.

스텔라는 'What you're looking at is what you're looking at!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지금 보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현재가 중요하며 보고 있는 것이 전부일 것이라는 오류에 대한 지적이며 또한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형곤은 "누군가가 기억하는 한 누군가는 영원히 살아 있다"라는 말처럼 스텔라의 유한성보다는 무한성과 속성을 보여준다. 특히 옻이라는 중요재료를 사용하므로 그 부분에서는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작품의 가운데 자리한 굵은 선은 미련과 무모함 때문에 놓지 못하는 많은 것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돌아보지 말고 그 자리에서 멈추라는 신호이며, 시작했던 것들이 고된 과정에 대한 결과를 보여주는 마침표라는 느낌을 준다.  이런 면에서 스텔라의 작품과는 차이가 있다.


가쁘게 산을 오를 때 잠시의 휴식을 통해 큰 숨을 내쉬며 정상을 바라본다. 곧 도착하리라 하는 맘으로! 그 숨은 살아가는 동력이며 자원이다. 우리는 산과 같이 목표를 향할 때만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숨을 쉰다. 그것이 멈출 수 있다는 생각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말이다. 돌아보니 숨이란 인간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이다. 그 숨의 크기가 띠를 뿐! 작가 이형곤의 작품처럼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은 자존감이며 그 크기는 작가의 작품 속 강한 힘과 맥락을 같이 한다. 힘이 들 때면 큰 숨을 쉬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무위의 품경/이형곤/장지에 옻칠/60호/2022/ Celine 소장



위의 작품들은 2022년 갤러리 라메르에서 촬영한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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