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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line Oct 01. 2023

위로에 대한 단상

나는 나에게 꽃을 선물했다.

"엄마~ 이번 추석엔 못 가요. 작업도 많이 남았고, 얼마 전 몸살을 앓고 났더니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가 않아서요. 엄마 미안해요. 혼자 있게 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엄마의 제사 준비를 마쳤다. 나는 모든 일을 혼자 한다. 하나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메모장에 손으로 정리를 해 둔덕에 추석 전 날 아빠께 음식을 미리 가져다 드리고 오던 길 아들에게 받은 전화내용이다.

늘 사랑이 가득한 나의 딸 감자.오빠 목소리를 듣자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오빠 안 온대요? 속상해 보고싶은데~ ㅎ

가을 하늘을 높고 푸르렀다. 공기는 색이 빠진 듯 투명했고 나의 마음 또한 텅 빈 느낌이 들었다. 주차장에 파킹을 한 후 아파트 길 건너편에 있는 화원으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늘 보던 화원인데 그날 유독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꽃 좀 사려고 하는데 어떤 꽃이 있을까요?" "선물하실 건가요?" "네" 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꽃을 골랐다. 국화는 집에 있고 장미는 좋아하질 않았다.  파스텔 톤의 거베라가 눈에 들어왔다. 거베라 두 송이와 미니 장미 한 송이를 샀다. 거추장스럽고 환경에도 좋지 않은 포장지는 됐다고 하자 "선물하실 거 아니신가요?" "네 선물할 거예요. 나에게 요." 주인장은 나를 보며 환희 웃었다. "명절이란 게 여자들을 참 힘들게 하죠? 잘 생각하셨어요. 너무 멋지십니다." 하며 꽃을 건네주았다. 혼자이다. 명절이란 것이 무엇인지 매일 같은 날이지만 그래도 아들의 온기로 집을 채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대한 상실의 타격이 제법 컸다. 감자와 집으로 돌아와 꽃을 꽂을 병을 찾아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나에게 선물한 꽃.꽃은 참 이쁘다. 이꽃저꽃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거베라의 꽃말을 찾아보니 신비, 수수께끼라고 한다. 그러나 속뜻은 은혜와 자비로움이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은혜를 받고 자비로운 사람이었던가? 허탈하게 피식 웃어보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스페셜한 날이지만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나의 집에 대한 예의로 말이다. 이번 일로 나란 사람은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느꼈다.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힘들 때는 음악으로, 일이나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을 때는 영화나 그림으로 말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사람에게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내면의 것을 다 꺼내 놓을 수 없을 때는 그런 방식으로 나 스스로 위로한다. 그리고 살아간다.

감자가 내 딸이라는 사실이 행복하다.

추석 날 엄마의 차례를 모시고 점심쯤 집으로 돌아오자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딸에게 온 전화를 받은 후 대충 약을 찾아 먹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전화기를 울린다. 언니와 형부이다. 엄마께 인사를 가야 하니 준비해서 만나자는 내용이다. 간신히 몸을 챙겨 거지꼴이 된 모양으로 감자와 함께 다른 가족들과 만났다. 엄마 앞에 서니 울컥 또 울음이 터졌다. 나의 모습을 보며 형부께서 "처재 많이 피곤했구나. 혼자 음식 다 만들고 고생했어. 난 우리 처재가 세상에서 젤 이뻐~" 위로받았다. 그 한 마디에. 그리고 아빠께서 좋아하시는 카페에 앉아 우린 밀린 수다와 흐르는 강물을 보며 두어 시간 머물다 언니가족들은 아빠를 모시고 아빠집으로, 나는 감자와 집으로 돌아와 보름달을 보며 소원도 빌지 못하고는 일찍이 잠들었다. 다음 날 밤 집 앞 학교 운동장에 나가 감자를 산책시키며 추석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어 보았다. 진심을 다해.  

달님 안녕~~ 소원을 말해봐~~

긴 연휴의 명절 때문인지 주차장엔 차들이 가득하다. 그 많은 차들을 바라보며 나이가 더 들어가면 지금보다 훨씬 외로울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워밍업이야. 강해져야지! 인정해야지!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감자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말이다.

가을이 가득해 지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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