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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line Jan 04. 2024

허기에 대한 단상

정신 씨~ 어디 있나요?

 정신이 없다.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밟는데 직원이 말한다."당신의 출발은 내일(1/3)입니다." "엥? Oh my god"을 외치고 전자 항공권을 확인을 해 보았다. "우씨~ 김씨~ 박씨~"가 입에서 나왔다. 나는 2일 출발, 3일 도착으로 알고 있었기에 항공권을 확인하지 않았었다. 내 실수니 어쩌겠는가? 숙소로 돌아가려 택시를 기다리는 시간은 30분이 넘었다.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 직원에게 오늘 갈 수는 없겠냐고 질문하자 잠시 기다리란다. 그렇게 한쪽에 서 있던 내게 항공사 직원이 다가와 수속을 밟아 주었다. 갈 때는 짐 때문에 생쇼?를, 올 때도 또 이런 쇼?를 했다.  곁과 집을 나간 나의 정신 씨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당신이 있을 곳은 내 곁이니 부디 돌아와 줄래요? 혹시 하노이 어딘가에 아직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거기 가만히 있어 줄래요. 언젠가 내가 꼭 찾아갈게요. 길이 엇갈리면 안 되니까요.'

실컷 마셨던 생과일 쥬스들.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잠이 쏟아졌다. 차가 막힌 관계로 세 시간가량 운전을 해 집에 도착하였다. 슈트 케이스 두 개. (기내용 하나, 화물용 하나.) 짐을 옮기는 것도 쉽지 않다. 내가 살고 이 낡은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러니 어쩔 도리가 없다. 낮잠을 자고 났더니 팔과 손가락 관절이 아프기 시작했다. 염증 테이프를 찾아 팔에 붙이고 자고 일어났더니 금세 나아졌다. 그리고 맛있는 벳남 커피를 마시다 이곳의 커피를 마시니 "으악~~ 무슨 맛이 이래 에퉤퉤~~" 혼자 중얼거리자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함께라 행복해하던 감자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집앞카페에서 바라본 풍경 그리고 분홍색 봉지에 들은 물티슈. 함께 한 친구가 이 카페에 처음왔을 때 사탕인줄 알고 꽉 깨물자 직원들이 웃었다는 얘기에 배를 잡고 웃었었다.
사립중고등학생들의 귀갓길. 분주한게 아니고 내겐 정신이 없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여독을 푸는 중이다. 아직 메일 확인도 하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 있는 딸이 한국에 온 친구를 통해 보내달라는 것들을 택배로 보내려 정리를 마치고 나니 한숨만 나온다. 한국에 돌아오면 행복하고 기운이 날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달리 이곳은 여전히 적막하다.  아무래도 나는 이곳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숨이 막힐 듯 단조로운 이 도시의 관계망 그리고 텅 빈 나의 집. 오전 일찍 아빠와 한 시간가량 수다를 떨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가슴에 돌을 얹은 것 같다. 입맛도 없어 모래를 씹는 느낌이다. 어제저녁 배가 고파 끓였던 콩나물 김칫국에 밥을 꾹꾹 말아먹었다. 이렇게라도 먹어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싸구리~ 저녀식사를 하러 가던 길에 돈을 주었다.  십만동이나~~ 공항에서 커피를 사 마셨다.

허기가 진다. 어젯밤엔 배가 고파 잠에서 깼다. 그리고 잠결에 미친 듯 떡볶이를 만들어 먹고 다시 잠들었다. 눈을 뜨고 바라본 나의 부엌은~~ 맞다 상상 그 이상이다. 오늘은 감자와 즐거운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그대로 쓰러져 깊은 낮잠에 빠지고 말았다. 눈을 떴다. 또 허기가 진다. 미친 듯이. 평소 먹지 않는 인스턴트 음식을 꺼내 들고 마구 흡입하였다.  아침엔 요거트 한 사발, 저녁이 다 되어가는 4-5시쯤 간단한 식사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양도 그리 많지 않다. 하노이에서도 이러한 패턴은 계속 유지되었었다. 그러나 어제 한국에 도착 후 계속 허기가 진다.  마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돼지로 변하기 전 부모들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연상하게 말이다.  허기를 면하고 나면 속은 계속 무겁다. 그러나 이틀째 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이유를 모르겠다.

세번사용하고 망가진 슈트케이스를 고치기 위해 가는 길에 만난 호안끼엠의 모습. 이곳의 유제품은 최고이다.

내가 음식을 찾는 이유는 딱 두 가지이다. 정말 배가 고프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이다. 이렇게 무절제하게 허기짐을 느낀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이다.  늘 황당 벳남!!! 을 외쳤지만 사실 나는 하노이를 매우 사랑한다. 전 세계 많은 도시를 다녀보았지만 땅의 기운이 나를 부르는 느낌은 처음이다. 한국의 생활을 정리하고 떠나고 싶지만 내겐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핸 아들도 한국을 떠날 예정이다. 아들마저 떠나고 나면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나이 드신 아빠뿐이다. 평소 언니와 남동생은 살뜰히 아빠를 보살핀다. 그러나 실제 아빠에게 급히 처리해야 하는 일들은 거리상의 이유로 거의 내가 해결한다. 그렇다고 나는 그리 효녀는 아니다. 아니 효녀가 아니기로 마음먹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

우리가 선지를 먹듯 염소 피에 고수,라임,견과류를 넣고 즐겨 먹는다. 내 가방을 수리하고 있는 모습과 사진을 찍자더니 갑자기 기다리라며 머리에 왁스를 바르고 온 맑고 귀연 청년
염소 고환에 밝히고 싶지 않은 재료를 다져넣어 만든요리. 아무 것도 모르고 먹었을 땐 정말 맛있었다. 염소 젖가슴 튀김도 마찬가지였다.  으악!우퉤퉤~하는 모습에 웃겨 죽겠단다.
가방을 수리하는 중 사장은 맥주와 따듯한 음식을 내 주었다. 으흐~ 치얼스~ Happy New Year를 계속 외치던 유쾌한 그들과. 난 씻지도 않고 나갔었다.

또 허기가 질까 두렵다. 약물을 복용하고 자다 일어나 이렇게 음식을 먹은 적은 처음이다. 솔직히  신체적 허기가 아닌 정신적 허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원인을 알 수 없기에 더 두렵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도시라는 외딴섬에서 지금보다 더 고립되어 살고 싶다. 하고 있던 일들은 모두 내려놓은 체.  나를 아는 이들이 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기간 동안. 지금 보다도 더 조용히, 그렇게 감자와 둘이 말이다. 자고 싶을 때 잠들 수 있고, 듣고 싶은 음악도 크게 맘껏 들을 수 있는 나의 공간에서 왜 이런 모습인지. 새해부턴 즐겁고 행복하려 했다. 그러나 늘 제자리를 맴돈다. 내 발목을 잡고 있는 녀석에게 한 마디 하련다. '그만하면 마이 했다. 이젠 제발 꺼져 줄래.' 


오늘 밤엔 오래간만에 빠닥빠닥 씻겨 향기가 폴폴 나는 감자의 따스한 털에 얼굴을 묻고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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