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겪어보는 행복에 대해서

'과거의 나'는 몰랐던 새로운 세계

by 온우

주말에 친구를 만나러 대전으로 여행을 떠났다. 출산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아기와 떨어져서 잠을 자는 외박이었다. 금요일 저녁 아기를 재우고 늦은 시간에 이동해 기차를 타고 숙소에서 자고, 다음날 친구를 만나 이른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설이와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 본 적은 없었다.


육아의 힘듦과 외로움을 툴툴 털어버리고 신나게 놀다 올 생각이었다. 금요일 아침부터 떠날 생각에 에너지가 넘쳤다. 혼자 하루종일 아기를 봐야 하는 현이를 위해 미리 집안일을 하면서 설이랑도 신나게 놀아주느라 낮잠 한 번 못 자고 바쁘게 움직였는데도 힘들지가 않았다. 동네 육아 친구들도 '아름다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라며 부러움 가득한 응원을 보냈다. 혼자 모르는 곳으로 훌쩍 떠나는 여행을 사랑했던 나였다. 이미 혼자 하루를 보낼 감성 가득한 숙소도 예약해 두었고, 기차를 타며 읽을 책과 숙소의 라운지에서 글을 쓸 노트와 펜도 챙겼다. 절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하루종일 이야기를 나눌 테니 분명 완벽한 여행이 될 터였다.


드디어 육퇴 후 집을 나서는 시간. 과거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 여행을 떠난다는 기분에 설레었다. 숙소에 도착해 오래간만에 스피커로 음악을 가득 틀어두고 글도 쓰고, 아기가 새벽 중간중간 깨는 소리에 벌떡 일어날 필요도 없이 오래간만에 푹 잤다. 일어나 숙소 앞 하천을 걸었는데 아기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아침 산책에 그저 기뻤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그만큼 저녁의 시간을 즐기고 아침의 바깥공기를 즐기고 나니 현이와 우리 아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잠을 잘 잤는지 물어보면서 아기와 얼굴을 부비고, 보들보들한 손을 잡고 싶었다.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도 더없이 좋았다. 어색할 정도로 여유로워서 카페에 앉아있는 동안에도 자꾸만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고, 아기가 깨지 않을까 신경 쓰지 않고도 하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렇지만 그 풍경에 내 가족과 함께이고 싶었다. 현이가 보내주는 아기 사진과 동영상에 더 눈길이 가서 친구가 혹여나 서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현이와 육퇴를 하고 나서 <워킹맘 다이어리>라는 드라마를 즐겨보았었다.


그중에 '과거의 슬론'이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슬론은 대형 출판사의 여성이자 흑인으로서 임원까지 올라간 일잘러이자 워커홀릭이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종일 이어지는 일이 아니면 퇴근 후에 유흥을 즐기는 게 일상이었던 그녀였다. 아기를 낳고 나서도 육아휴직을 쓰지 않고 신생아 케어와 일을 같이 해내겠다고 분투하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을 고쳐달라며 심리 상담가인 친구 앤을 찾아간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


앤도 사춘기 첫째 딸과 부딪히며, 어린 둘째 딸까지 케어하느라 지친 상태였고 둘은 '과거의 슬론'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과거의 슬론이었다면 무얼 하면서 즐거워했는지를 찾아보자고 하자, 슬론은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가기도 어려운 값비싼 레스토랑에 워크인으로 들어가, 룸을 전세내고, 바텐더에게 갑질을 하며 술을 마시고, 몸 좋은 남자들을 불러 유흥을 즐긴다. 과거의 그녀가 즐기던 일상이었다.


레스토랑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슬론은 깨닫는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신나게 즐겼던 것들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는 걸 말이다. 슬론과 앤은 눈앞의 유흥을 즐기려고 노력해 보다가 서로 마주 보고는 이구동성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나 보러 가자.' 그러고는 둘은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과거의 나'를 넘어서 이미 새로운 세계에 들어와 버렸다고 느꼈다. 고요한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 일, 감각적인 것에서 영감을 얻는 일, 그렇게 하루종일이고 일주일이고 바깥세상에서 인풋을 받고 행복해지는 일이라는 내 삶에 변함없을 것이라 예상했던 즐거움이 '가족'이라는 행복 앞에서 부질없게 되었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기를 낳기 전 가장 경계했고, 원치 않았던 것이 있다면 '아기가 나 자신보다 소중해진다'는 것이었다. 아기가 생기면 나 자신을 잃게 되고, 결국 아기가 우선이 된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기가 생겨도 나는 나 자신을 지켜내고 싶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이 감정은 말로만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내 자신이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아이랑 함께하는 시간이 내게 가장 행복한 것이었다. 그래서 과거의 내가 즐겼던 일들이 아니라 아기와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일들이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나 자신을 잃는 걸 가장 경계했던 나는 임신했을 때부터 아기가 없는 혼자 여행을 계획했었다. 조산 위험의 이슈로 태교여행도 취소하고 집에서 누워있으라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을 받은 나를 대신해 현이를 친구와 다녀오라고 여행을 보내주었다. 대신 출산 후에는 나도 4박 5일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설이가 생후 100일이 넘으면 다녀오겠다던 여행은 200일이 다되도록 아직 언제, 어느 나라로 갈지조차 정해지지가 않았다. 바쁘게 이어지는 육아에 시간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원치 않아서였다는 걸 이번 짧은 외박을 통해 깨달았다. 아기랑 함께라면 분명 체력적으로도 힘들 것이고 제한되는 것들도 많을 텐데, 어차피 갈 여행이라면 가족과 함께 가고 싶었다. 아기한테 미안해서, 혹은 눈에 밟혀서라는 단순한 이유라기보다는 그게 내가 더 즐거울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과거의 나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행복의 세계였다. 임신했을 때만 해도 아기를 낳고 스페인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는 육아중인 동료에게 지금이라도 꼭 갔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했고, 주중에 야근에 시달려 힘들어하던 친구에게 주말에 아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잠시 뒤로하고 혼자 여행을 가보라며 여행지를 추천해 주었던 나였다. 아이 곁에 있으려고 하는 그 모습이 희생처럼 보여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아이 옆에 있는 것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아이를 만나지 6개월이 흐르고 나는 내가 깨닫지도 못한 새에 새로운 세계로 이미 건너와 있었다. 분명 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사랑하고, 혼자 훌쩍 떠나버리는 여행을 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 시기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건 아마도 아이가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장 기뻐하고, 그저 나에게 안겨있고 매달려있고 싶어하는, 그런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장 행복에 가까운 시기가 지나고 나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지금은 하루에 한 번은 꼭 우리 설이와 마주 보고 깔깔대며 웃고 싶다. 그래서 홀가분함 보다는 어렵고 힘든 것을 기꺼이 선택하기로 한다.


나 자신을 잃어서가 아니라, 난생처음 겪어보는 가슴이 저릴 듯한 지금의 나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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