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짱고책방

모든 게 처음이었던 시간

<귤의 맛> 조남주 저

by 짱고아빠

초록색일 때 수확해서 혼자 익은 귤, 그리고 나무와 햇볕에서 끝까지 영양분을 받은 귤. 이미 가지를 잘린 후 제한된 양분만 가지고 덩치를 키우고 맛을 채우며 자라는 열매들이 있다. 나는, 그리고 너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p.161)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작가의 신작이라 하여 당연히 페미니즘 소설이거라 생각했는데, 책은 같은 약속을 둘러싼 4명의 중학생들의 기록이다. 중학생. 어리다면 어리고, 다 컸다면 또 다 자란 세상에서 가장 애매한 나이의 아이들의 성장 담은 늘 싱그럽다. 제목처럼 귤의 맛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한없이 달지만 때론 새콤한 맛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 까먹어 보기 전까진 알 수 없는 그 귤의 맛.



소설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네 친구가 함께한 약속에 관한 네 명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네 아이의 속 사정과 이야기를 찬찬히 흝어 내려간다. 아픈 동생 때문에 외로운 다윤이와 무너진 가계로 인해 어려운 해인이. 가장 친한 친구와 이유를 모른 채 헤어져 버린 소란이와 왕따의 기억이 있는 은지. 한 공간 안에서 네 명의 이야기는 묘하게 어긋나고 이상한 곳에서 다시 만나는데 이 시기를 지나는 아이들의 모습과 감정을 세세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님의 마음이 읽는 내도록 좋았다. 귤의 맛. 어떻게 이렇게 딱 떨어지는 제목을 생각했을까 싶을 정도로 이야기는 꼴깍거리며 마음을 간지럽힌다. 돌이켜 보면 그 시기의 나도 그랬다.


중학교 교실에 처음 들어가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난생처음 까까머리를 한 우리는 긴장한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섰고 곧 서로의 이름을 알았다. 나는 반장인가 부반장이 되었다. 공부도, 운동도 그렇다고 사랑에도 딱히 특출하지 못했던, 아니 그 모든 것이 처음인 우리는 그 처음에 대해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첫사랑, 첫 캠핑, 첫 외출, 첫 주먹다짐. 돌이켜 보면 이불킥 없이는 돌아볼 수 없는 순간이 몇 되지만 그래도 그 시절은 아마도 평생을 곱씹어 볼 정도로 강렬하고 또 따뜻했다.


성장소설은 읽을 때마다 나를 그 시기로 데려가 준다. 그리고 난 그 기억이 참 좋다. 한때의 기억으로 평생을 산다고 했던가. 물론 그 시절만 추억하며 살기에 내 삶은 여전히 바쁘고 정신없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가끔 숨 쉴 구멍이 나곤 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두 시간 동안 좋았다. 따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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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의 맛 / 조남주 저 / 문학동네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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