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이석원 저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가족 중에 암에 걸린 사람이 없는 것, 빚쟁이들의 빚 독촉 받을 일이 없는 것, 먹고 싶은 라면을 지금 내 손으로 끓여먹을 수 있다는 하찮은 것들뿐이라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의 크기가 결코 작은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체념에서 비롯된 행복이라면, 더 많은 것을 갖고 싶고, 하고 싶은데 그 모든 욕망들을 어쩔 수 없이 꾹꾹 누르고,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영화에 일찌감치 백기를 든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건 자신에 대한 기만이 아닐까.
- ‘어느 보통의 존재’ 중에서
애정 하는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아니 '언니네 이발관'=이석원 아니던가. 소설이었는데 어느 책에서 뜬금없이 이석원에 대해 언급하는 챕터를 보았다, 여자친구가 남자친구를 차버리면서 좀 천재 같은 사람이라며 이석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와 현남친을 비교하며 넌 왜 이거 밖에 되지 못하느냐를 이야기하는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 책은 이미 아는 사람 사이에서 밀리언 셀러의 반열에 섰지만, 그리고 꼭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읽는 내도록 마음이 아팠다. 아니 감성적이게 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까. 서른여덟의 이석원이 느끼는 삶의 무게라든지 하는 것들이 이제 막 서른여덟을 지나버린 나의 그것과 비슷해서 였을까. 쉬 넘어가지 못하는 책장을 몇 번이나 다시 넘기며 그렇게 한참을 붙잡고 있었다.
책 제목이 선언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보통의 존재다. 누군가 너는 특별하다고 주문을 거는 통에 가끔 내가 특별한 누군가가 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그게 가끔은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언젠가 만나게 되는 처절한 현자 타임을 지나고 나며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 누구도 다른 이보다 특별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그냥 보통의 존재라는 것을. 아니 보통은커녕 오히려 남들보다 못하지는 않을까 그냥 전전긍긍하는 그런 찌질한 존재들이라는걸.
이럴 때마다 기억해야 한다. 중요한 건 이것이다. 우리는 남보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지만 반대로 그렇게 못나지도 않았다. 부모나 직업이나 경제적, 신체적 능력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 주지 않는다. 그 잘난 환경을 감사하게 받되 그것이 곧 내가 아님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배경에 침잠되어 그것을 나와 동일시하며 사람 같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이를 우리는 무수히 목격하지 않는가. 단지 이 땅에 축복받고 태어났다면, 우리는 같은 행복을 누리기 마땅하다. 이것을 인정하는 건 중요하다.
책은 삶의 여러 꼭지에 대한 이석원의 생각이다. 결코 가볍지 않는 사색이 생각할 거리를 마구마구 던져주는데 그 깊이와 적당한 어둠이 반갑고 좋았다. 그의 글도 참 좋았지만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 이석원이나 나나 같은 보통의 존재라고 해놓고 나는 그를 부러워한다. 그래 이것도 아마 내 존재겠지.
괜히 언니네 이발관을 다시 플레이리스트에 넣었다. 까만 밤, 작은 반지하 방에 울려 퍼지는 가뜩이나 공허한 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
* 아.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는 내가 아는 앨범 중 손에 꼽을만한 명반이다.
나는 알았다. 정말로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게 사랑이구나. 하게 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게 사랑이구나.
사랑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 노력할 것이다.
(p.241)
보통의 존재 / 이석원 저 / 달, BF북스 /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