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냥줍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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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 발견 즉시 #고양이를생각합니다, #고양이라서다행이야 등 여러 냥이 카페 및 페북 클럽을 통해 도움을 요청드렸고,
아주 잠시만 직원들의 양해를 구해 임보 혹은 입양처가 구해질 동안만 복지관에서 일주일 정도 살 수 있었습니다.
복지관에 잠깐 있을 동안이지만 매일 같이 내려가 쓰다듬어 주시고 밥 주시고 물주시고 놀아주신 직원 여러분(특히 김다은 님), 직원 자녀 여러분, 고양이 보러 복지관에 온 아동 여러분, 간호사 선생님 모두 모두 감사드립니다.
사실 일주일 정도 기다렸는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길냥이로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사무실 냥이 하고 싶었지만 많은 직원 중 반대가 하나라도 있으면 가능하지 않던 시나리오였고,
저희 집 둘째로 들이기에도 첫째의 반발이 심했고, 첫째의 반발만큼 이 자식의 지랄도 보통이 넘었었어요.
직원 몇몇도 데려가 키워보겠다고 말은 했으나 다른 가족의 양해를 구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냥이 키우고 싶어 하던 공익 친구도 하나 있었지만 데려갈 수 있는 날짜는 내년 1월.
냄새난다, 시끄럽다, 내보내라는 압박은 거세지고 어쩌나 싶어,
다시 길로 보내야 하나 싶은 마음에 TNR까지 시켜버렸더랬습니다.
그러던 중 임보 천사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결국 녀석은 8월까지 한시적 허락을 받고 임보처로 이동했습니다.
냥이가 예뻐서 나 달라는 할매들이 많았음에도,
냥이 두 마리 키워보신 임보님께 냥이는 전해졌습니다.
임보가 끝난 다음 대책은 없었습니다.
다시 집에 데려와 어떻게든 짱고랑 2차전 치르게 하는 방법밖에는 ㅠㅠ
그리고 7월,
이제 이 녀석을 어떻게 하나 걱정하던 찰나에,
임보님은 냥이에게 #세모 라는 이름을 지어주셨고
이렇게 선뜻 세모의 집사가 되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
이 아이는 이제 냥이가 아니라 <세모>입니다.
세모는 예쁘게 잘 크고 있고,
아마 새 집사님 사랑받으며 잘 클 거 같아요.
평생 다시는 버림받지 말고 그렇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다시는 보지 말자 우리 :)
태어나 처음으로 냥줍이라는 걸 해봤고,
처음 보는 냥이 한 마리 때문에 몇 주를 마음 졸이며 골치 아파봤고,
그 냥이와 냥이 거둬주신 분께 선뜻 내 지갑 열어 가면서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신기한 경험을 해봤습니다.
세모 집사님께선 세모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연락 달라고 하셨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제 정 좀 떼야할 거 같기도 하고, 집사님 계신데 내가 뭐라고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사실 이 경험이 좀 신기하긴 합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아무 의미 없는 인연, 묘연인데 이렇게까지 애틋해하고, 마음이 가고,
이 일을 생각만 해도 살포시 웃게 되는 걸 보면요.
행여 지금 이 시간도 냥줍 하시고, 냥줍 한 아이 때문에 맘 졸이시고,
또 그 아이를 입양하시는 모든 분들께 고맙고 힘내시라는 말씀 전해드립니다.
언젠가는 어딘가에 있는 고양이 마을처럼 ,
길 위의 모든 고양이 아니 모든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여 '예전엔 사람들이 걔네들 때리기도 하고 그랬대 허허' 하며
이런 일들 웃어넘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우리 집 여포인 이 녀석과도 뭔가 좀 돈독해진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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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뒤
세모를 가끔 생각만 하던 어느 날,
임보 자님께 생일선물이 왔어요.
잘 지내고 있는 세모의 사진과 함께.
여러분, 냥줍이 이렇게 행복한 일입니다 :)
다들 득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