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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ug 30. 2022

그래 봐야 휴대폰인데....

내 정신승리의 시작

으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넘어지고야 말았다. 예전엔 덜 그랬는데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자주 넘어지는지 모르겠다. 더 최악은 아이폰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는 점이다. 쿵찌르륵. 휴대폰 액정이 바닥에 갈리는 이 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안다. 끔찍하고, 또 끔찍한 차마 꿈에서 조차 도망치고 싶은 이 소리를.


손도 째지고 무릎도 깨졌지만, 문제는  몸이 아니다.  몸보다 귀한 아이폰. 사랑하는 아이폰 12 프로맥스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예상대로 강화유리가 박살이 났다. 다행이다. 지난번 휴대폰을  먹었을  강화유리를 붙여놓았던 나는 이미 승리자다. 손바닥이 째지고, 무릎팍에 피가 질질 났지만 일단 상관없었다. 온몸을 질질 끌고 다리를 끌고 일단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강화유리를 떼어냈는데 .. 강화유리가 일해준 전면부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보호받지 못한  바닥과 조우했던 휴대폰 아래쪽 유리는 제멋대로 박살  있었고 유리가루는 흩날리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망하고야 말았다.


휴대폰 액정이 깨졌다는 비보를 와이프에게 전했다. 아내님은 손과 무릎을 걱정했지 아이폰 따위엔 관심도 없다. 내 맘 아무도 모른다. 지난번 같은 이유로 이미 44만 원을 깨 먹은 이력이 있기에 사설 수리 업체 몇 군데를 급히 알아보았다. 20만 원 내외로 수리가 가능해 보인다. 이미 두 번이나 깨버린 휴대폰 팔아버리고 새 폰을 살까도 고민했는데 팔고 사고 하기에는 일이 너무 많다. 일이 내 마음처럼 될 거라는 보장도 없다.


하아..


한참을 휴대폰을 내려다보다, 다친 무릎과 손에 약을 바르고 씻었다. 머릿속엔 '어떡하지'가 떠나지 않았고 샤워하는 10분 안에 그 대답이 나올 리 만무했다. TV를 켰다. 또 시끄러워진 뉴스와 유튜브 몇 개를 보고 리뷰해야 할 책을 펴 들었다. 잠들기 전 SNS를 확인하려다 말았다. 워치에 알림이 오지 않았다면 아마 내 SNS에서 나를 찾는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그렇게 잠이 들었고, 휴대폰 알람 소리에 일어났다. 씻고 일어나 컴퓨터에 앉아 플로리다에 사는 할머니와 10분간 영어수업을 했다. 출근하려 옷을 입고 가방을 들며 휴대폰의 음악을 켰다. 헤드폰과 연결된 음악이 흘러나왔고, 회사에 도착해 업무용 PC와 아이패드로 확인 못한 메일과 SNS 등을 열었다.

휴대폰 하단 부분은 일부러 보이지 않게  가려놓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안보인다.. 안보인다.. 안보인다….


 '그래 봐야 휴대폰인데..'


태어나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정신승리를 나도 한번 실현해보기로 했다. 그래 봐야 휴대폰인데. 언제든 떨어뜨릴 수 있고 깨질 수 있는 소모품인데. 그냥 그럴 수 있는 일이었는데. 오히려 한밤중에 휴대폰 붙들고 있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목록 최상단에 위치했지만 이제 이렇게 아이폰을 놔주려 한다. 그래 봐야 휴대폰인데. 휴대폰에 나의 오늘을 뺏기지는 않을 것이다. 잘되진 않겠지만 하루 이틀 매일 깨진 휴대폰 모서리를 쳐다보고 있으면 나도 무언가 적응되지 않을까.


그래, 그래 봐야 휴대폰인데..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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