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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Oct 22. 2022

줘도 지랄

체리피커가 똑똑한 소비자? 아니 그냥 헌터.

1.'줘도 지랄' 복지관 직원이던 시절 늘 불만이었던 어르신에게 붙인 별명이었다. 도시락을 받을 때도, 밑반찬을 받을 때도, 이건 짜다, 어떤 건 크다, 어떤 건 딱딱하다, 또 어떨 땐 맹숭맹숭하다, 이걸 먹으라고 준거냐 등. 늘 컴플레인 전화가 들어왔고 그 전화를 담당하는 건 담당자였던 내 몫이었다. 물론 체리피커와 이 경우는 조금 다르게 해석되어야 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뭘 주고도 욕 얻어먹는 입장은 피차일반이기도 하다.


2. 페북과 인스타가 처음 달아오르던 시절, 인증샷을 SNS에 올리면 음료수 따위를 주는 식당들이 있었다. 나도 꽤 많이 참여했고, 그때만 해도 이런 이벤트들이 제법 유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이벤트가 싹 사라졌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이런 이벤트 해시태그를 타고 가야만 발견되는 가계정, 그나마 식당 문을 나서며 게시글을 지워버리는 체리피커들이 언젠가부터 우후죽순처럼 늘어났고 더 이상 사장님들은 손해 보는 이벤트를 열지 않았다.


3.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캠페인의 인스타 계정에서 이벤트를 몇 개 진행했다. 인스타 이벤트는 제법 참여가 간단하다. 오픈한 지 하루 만에 댓글과 해시태그는 터졌는데 스코어가 이상했다. 참여와 바이럴은 n배로 늘어나야 정상인데, 두 수치는 거의 1:1의 같은 숫자로 흐르고 있었다. 열어보니 참여의 95% 이상이 가계정, 그것도 피드에는 이벤트 참여 내역밖에 없는 체리피커들이었다. 팔로잉 한자리, 팔로워 천 단위. 모든 게시물의 좋아요는 0 아니면 1개. 저기 우리 캠페인은 없었으면 하는 이벤트 게시물 사이에 내가 공들인 캠페인은 자리하고 있었고 그렇게 내 캠페인은 쓰레기가 되고 있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최대한 체리피커를 걸러내고 선물을 전달했다. 그럼에도 나중에 주소를 받고 보니 100개 중 같은 주소가 12개나 됐다. 한 사람 당 한 개만 줄 수 있노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DM을 보냈다. 대부분은 대꾸도 없다. '아 걸렸네' 정도로 생각하겠지. 그런데 이 와중에 막무가내인 이들도 있다. 그날 밤 인스타 DM으로 내 선물 내놓으라는 익명의 누군가와  밤새도록 싸우며 얼마나 회의가 들었는지 모른다. '줘도 지랄' 내년부터 인스타 이벤트 따위 하지 않을 거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4. 00문화재단에서 다독전을 진행한단다. 읽은 책을 인스타에 리뷰 게시글을 올리고 내용이 많은 사람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는데 인스타 책 계정 운영하며 늘 하는 일이라 재미있는 이벤트가 될 것 같았다. 우리 동네에 나처럼 책 읽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왠 걸. 결과 발표 날 1,2등까지만 발표되고 그 아래 등 수는 해당자 없음이라고 발표되었다. 내가 제대로 응모조차 되지 않았나 싶어 담당자에 문의하니 표절 방지랑 전문가의 선정이라는 기계적 답변만 돌아왔다. 

대체 누가 일등인가 열어보니 여기도 체리피커다. 내가 아무리 빨리 읽고 많이 읽어도 하루에 도서관에 앉아 책을 5-10권씩 찍어내는 계정을 이길 수 없다. 한번 더 담당자에게 읍소해 봤지만 바뀌는 건 없다. 내가 쓴 글이니 표절 일리는 없고 대체 어떤 전문가가 목차만 늘어놓은 게시물이 리뷰 게시물보다 낫다고 판단했는지, 아니 어느 정도 비슷하기라고 해야 인정을 하지, 그 계정의 좋아요 수 전체를 더한 것이 내 게시물 하나의 좋아요 보다 못한데 이게 비교가 가능하냐 따지고 싶었지만 부글거리는 마음을 그냥 접고 말았다. 아마 다음부터 난 이 재단의 어떤 행사에도 좋은 마음으로 참여하지 못할 것 같다.

왼쪽이 1등 계정, 오른쪽이 탈락계정


같은 책 리뷰, 왼쪽이 1등 계정 오른쪽이 탈락계정.



체리피커란 '케이크의 체리만 쏙 뽑아 먹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로 자신의 이득이 되는 것만 챙기고 사라지는 이들을 의미한다. 예전엔 카드사에서 혜택만 챙기고 카드를 이용하지 않는 이들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는데 요즘은 이런 이벤트만 챙기고 사라지는 헌터의 느낌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는 이런 체리피커들을 체리슈머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른다. 위에 열거한 사례들처럼 이들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똑똑한 소비자의 진화로 본다. 이전에는 일방적으로 기업이 홍보하고 소비자가 받아야 하는 사례였지만 이젠 쌍방향이 소통이 중요해지고, 고객 경험이 기업의 홍보보다 더 중요해진 시대에 기업도 이런 이들을 부정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제품을 샘플링할 수 있는 소비자, 잠재고객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이들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너무 나쁜 사례만을 경험해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이 의견이 별로 동의되지 않는다.


경험상 체리피커들을 게임에 참여시키는 것은 어떤 호스트의 경우든, 게스트의 경우든 공정하지 않다. 호스트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준비한 이벤트 체리피커들에 의해 더럽혀지는 기분이고, 게스트의 입장에서도 자격 없는 이들의 새치기로 느껴져 정작 그들이 수혜자가 될 때 호스트, 즉 기업의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는다. 더군다나 이런 이벤트의 타켓은 가장 공정에 민감한 이들 아니던가.


줘도 지랄. 글쎄 난 그들이 잠재고객이라기 보다 블랙컨슈머에 더 가까워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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