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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Dec 28. 2021

역할조직과 위계조직 그리고 비영리조직

비영리는 실리콘밸리가 될 수 없다

2018년에서 2019년을 지나는 즈음, 정확히는 코로나 직전, 실리콘밸리의 운영방식이라는 역할조직과 위계조직에 대한 논의가 핫했다. 역할조직이란 프로, 즉 전문가가 된 개인이 점으로 뭉쳐 있는 조직을 말한다. 프로젝트가 태스크 단위로 쪼개져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고 그 역할을 완성했을 때 그림이 합쳐지는 조직. 누구나 할당된 양이 명확하기에 자신의 업무에 책임을 져야 하고, 자신이 맡은 과업에 관한 한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위계조직은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조직이다. 사장부터 사원까지 일직선으로 늘어져있고 책임은 위쪽에, 실무는 아래쪽에 전가된다. 끊임없는 피드백이 이어지고 그 와중에 가장 좋은 것을 건져내곤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실리콘밸리=역할조직, 한국=위계조직"을 도식화 해서 "역할조직=좋은 것, 위계조직=나쁜 것"이란 도식을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하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역할조직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할조직과 위계조직은 각자의 역할과 운영방식이 있으며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상황, 이에 따른 효율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는 비영리조직 또한 마찬가지고 무작정 이것이 좋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에게 맞는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1. 역할조직에 맞는 조직이 없다

역할조직은 말 그대로 프로들의 집단이다. 축구를 예를 들어볼 때 공격수가 11명으로 구성된 팀은 필요가 없다. 감독(매니저)이 지향하는 포메이션에 따라 공격수 3, 미드필더 4, 수비수 3, 골키퍼 1 정도로 구성원이 필요하며 잉여자원에 관해서는 트레이드나 해고를 통해 선수단을 정리한다. 즉 조직 내 모든 구성원은 동료이지만 내 포지션을 위협하는 적이기도 하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어나는 장이며 연차나 연줄이나 자격증 따위가 아닌 실력으로만 연봉을 증명해야 한다.

이러한 고용안정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실력으로만 운영할 수 있는 비영리조직은 미안하지만 없다. 아니 이에 앞서 오늘날 사회복지, 비영리조직 중 감히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직군과 인원이 애매한 것 또한 사실이다. 사례관리 전문가, 프로포절 전문가, 모금전문가 말은 하고 있는데 이들의 업무가 "전문"이 아니라는 건 매년 일어나는 인사이동을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사례관리, 지역조직, 자원개발 하물며 회계파트까지. 거의 모든 조직이 매년 연말만 되면 고인물이 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팽이 돌리듯 이곳저곳으로 인원을 교체해 댄다. 그곳에 전문성이 기인할 틈이 있을까? 거듭 강조하지만 전문성은 우리끼리 불러주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우리를 인정해줄 때 생겨난다.

그런 전문성은 개발자들에게나 있는 거 아니냐는 반문을 받곤 하는데, 굳이 IT가 아니더라도 '마케터'라 불리는 참고할만한 좋은 레퍼런스 그룹이 있다. 그들이 조직 내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떻게 일하는지 참고할 필요가 있다.


2. 역할조직에 맞는 사람이 없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조직은 위계조직의 모습을 띠고 있고, 여기서 자란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역할조직을 경험해 본 이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역할조직에 맞는지에 대해 제대로 자문해보지도 않고 역할조직을 동경하는 이들이 많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점은 사회복지, 비영리섹터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성향과 성품이 대부분 선하고 착하다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은 돈이 아니라 가치를 좇아 이곳으로 흘러왔으며 이미 한번 실패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는 삶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정립한 이들이 대부분이다.(물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닌 경우도 많다.) 이들에게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요청했을 때, 이를 받아들이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 무한 경쟁을 기피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일잘잘'이란 말이 있다. 일은 잘하는 사람은 사실 어디에 둬도 잘한다. 주변의 일 잘하는 이들을 돌아볼 때 이들은 대부분 일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누구와 일하든, 어떤 환경에서 일하든 그렇다. 


3. 역할조직에 맞는 업무도 없다

롤에 따라 역할조직이 맞는 업무도 간혹 있을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사회복지, 비영리 섹터의 업무는 대면 서비스, 케어 서비스를 진행하기에 1/n로 쪼갤 수 없고 성과평가 또한 그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사례관리의 경우 1명의 대상자가 10명의 대상자보다 케어가 힘든 경우도 많고, 자원개발 또한 들인 품에 비해 성과가 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대상자의 가족이 일을 대신해주는 경우도 있고, 무명의 독지가 전화를 먼저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억대의 자원개발을 달성하기도 한다. 

이런 업무와 역할 특성을 가진 비영리 조직의 성과평가는 역할조직에서 보이는 객관적이 평가가 아니라 관리자와 평가자의 주관적에 의한 업무평가가 더 효율적이고 공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위계조직 위주의 현재 사회복지 비영리 조직에서 직원들의 가장 큰 불만이 관리자가 무임승차자로 비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나, 이는 사람의 문제지 조직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4. 코로나 이후 위계조직은 이미 그 활동성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 많은 조직이 재택근무를 강제적으로 도입하며 많은 이들이 매니저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위계조직에서 팀장 즉 매니저는 부서의 일을 보고받고 결정하고 케어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는데 재택근무로 직원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며, 매니저들은 매니저대로 팀원들은 팀원대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바로 옆에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되자 팀원들은 조금 더 많은 것을 결정하게 되었고, 바로 앞에서 상황을 체크하지 못하는 매니저는 한정된 정보 때문에 작은 결정을 팀원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 구조는 매니저의 역할을 점점 무임승차자로 몰아갔고, 이윽고 매니저들은 나에게도 일을 달라고 읍소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아마 많은 조직이 코로나가 해결된 이후에도 이와 같은 재택근무, 스마트 근무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재택근무가 불가피하게 도입이 되었고, 오피스에서는 비용절감, 직원들은 새로운 직원 복지로 재택근무를 이야기하는 등 또 다른 세계가 열려버렸다. 아마 많은 기업이 오피스 중심의 현재의 업무체계를 버리고 새로운 업무체계를 그려갈 것이다. 


5. 그렇다면 비영리조직은?

기존의 조직들은 이러할진대 사회복지와 비영리조직은 어찌해야 할까. 앞에서 언급했든 대면 서비스, 케어 서비스를 위주로 하는 사회복지 비영리 조직의 경우 역할조직으로의 조직구조 변경도 재택근무를 위시한 스마트 근무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언제까지 과거의 조직에만 머무를 수 없기에 조금은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1) 역량 있는 매니저 선임 : 사회복지, 비영리 조직의 경우 팀장의 연차가 넘사벽인 경우가 많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자 하면 IMF 이전에는 40대 이상이 되면 적은 연봉 탓에 그만두고 사업하시는 선배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안정이 사회 기조가 되면서 이러한 현상들이 끊겼고, 대부분의 사회복지 비영리 조직의 경우 서열 정체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사회복지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에 어린 나이에 관장님이 되신 분이 아직 관장님이고 안타깝게 그다음 차를 타신 분들은 20년 동안 여전히 부장님이다. 그 아래 팀장, 과장은 말할 것도 없고 10년째 사회복지사인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조직의 경우 어렵지만 명예퇴직으로 고인물을 빼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연공서열 파괴가 반드시 필요하다. 연차나 경험이 아니라 능력위주로 매니저를 선임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사회복지 비영리 기관에 입사하는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걸 줄 필요가 있다. 세상은 능력 위주로 재편되고 있고, 후배님들은 더 이상 사회복지 비영리 조직을 쳐다보지 않는다. 


2) 진짜 전문성 강화 : '사회복지사는 전문가다 왜냐하면 자격증이 있으니까'라는 이야기는 20년 전 내가 대학 다닐 때부터 하던 얘기고, 그 자격증은 이제 운전면허와도 견줄 수 있는 국민자격증이 되어버렸다. 전문가는 우리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불려지기 시작할 때 비로소 전문가가 된다. 사실 사회복지 분야 안에서도 전문성을 특정화할 수 있는 부분은 꽤 많다. 문제는 이것저것 다 해봤던 우리 선배들이 이것저것 다 해봐야 성장한다는 사고로 지금도 연말마다 인사이동이라는 이름 아래 조직을 들었다 놨다 하며 전문성이라는 부분을 스스로 상쇄시켜 버리는 점이다.

스페셜리스트와 제네럴리스트의 오래된 논쟁에서 일반 조직은 스페셜한 부분을 점점 더 세분화하기 시작했다. 작은 것에 스페셜한 이들은 점차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가고 거기에서 스스로의 몸값을 올린다. 하지만 우리는 늘 스페셜리스트를 말하며 결국 제네럴리스트를 길러내고 잇다. 부장을 하기 위해서, 관장을 하기 위해선 조직 내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아야 한다는 이유다. 글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민간이 모든 것을 장악하는 지금(사회복지도 바우처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지 않은가) 결국 사회복지관도 비영리조직도 전문경영인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 시기에 '나는 00를 잘해요'와 '나는 전부 다 할 줄 알아요' 중 어느 것이 더 경쟁력 있을지 실무자라면 한 번쯤 고민해야 한다.


3) 혁신 : 모두가 혁신에 목말라 있다. 한방, 눈에 띄는 한방을 모두 갈구하고 있는데 그 혁신은 새로운 바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오래 생각하고 궁리했던 사람, 그 판을 만들고 움직여봤고 이제 지긋지긋해져서 손가락만으로도 일을 해낼 수 있는 이가 자신의 생각의 각도를 틀었을 때 생겨난다. 슈퍼맨은 없다. 새로운 인재가 영입되면 혁신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했던 일을 그대로 1년 반복할 따름이다. 이 혁신을 가장 빨리 가져오는 방법,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인재와 자원을 잘 활용하는 방법, 이를 토대로 새로운 사회복지 비영리 혁신조직을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해 같이 고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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