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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Dec 02. 2021

그가 우리를 떠난다고 말했다

비영리 조직의 인사관리 / 우리는 스페셜리스트인가 제너럴리스트인가

바야흐로 인사철이다. 인사이동이 잦은 회사에서 가장 뒤숭숭한 시기가 바로 지금 연말이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던가. 임원진을 비롯하여 이런 거 좋아하는 리더들은 새판 짜기에 돌입했다. 체스판 말 마냥 다양한 직원들을 들었다가 놓고, 끼워 넣었다가 뺀다. 여기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어떤 이들은 정치를 하고, 어떤 이들은 예언자가 된다. 십수 년째 이 소용돌이를 헤쳐나가는 와중에 다양한 리더들을 만났다. 


경험상 팀을 꾸려야 하는 리더들은 크게 두 가지의 모습을 띤다.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직원을 사수하는 리더, 또 하나는 오는 사람 안 말리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 리더다. 난 후자가 멋지다고 생각했고, 나 또한 사실 멤버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누가 오든 일은 일일 테고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거부하는 이들도 쉽게 내 팀에 들어올 수 있었다. 누군가는 편견이 없는 리더라 추켜세웠지만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나는 그에게 역할을 주고, 그 역할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그만이었다. 어쩌면 내게는 회사에서 우리 팀에게 주는 목표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올해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 팀에는 당신이 필요해요"

뒤늦게 본 드라마 <WWW : 검색어를 입력하세요>에서 제일 꽂혔던 대사다. 거액의 연봉에 경쟁사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직원에게 팀장은 잘돼서 가는 거니 좋은 거라고 쿨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이내 찝찝한데 보다 못한 그의 멘토는 팀장에게 말한다. '너 걔 필요 없어?' '아니요 필요해요' '그럼 가서 잡아' 팀장은 멤버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팀원은 의외의 대답을 하며 엉엉 운다.

'저는 이 팀에서 필요 없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고백하자면 나는 올해 처음으로 공룡이나 유니콘 같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팀워크를 경험하게 되었다. 각자의 역할과 장점이 분명하고 서로 존경하고 배우며, 서로의 합이 빚어내는 시너지가 눈에 보이는 결과로까지 이어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팀워크가 이 땅에 실제로 존재했었고, 이가 빚어내는 시너지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아버렸다. 함께 하는 야근이 즐겁고, 커피를 마시면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의 잘됨에 대해 스스럼없이 칭찬하고 어려워하는 점에 대해 드러내고 지지하는 관계. 이건 단순한 사적 친밀과는 달랐다. 물론 이 팀워크는 사적 친밀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관계없었다. 팀의 목표와 개인의 성장이 선순환되는 관계, 정말 괜찮은 팀이었다.


그런데 그중 막내가 팀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물론 떠남을 주저하는 이유는 이 팀워크였고, 떠나고 싶은 이유는 주니어 레벨에서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 고민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보내야 할 이유였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보내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했다.


인사이동이 잦은 조직이 있고, 그렇지 않은 조직이 있다. 

공무원 조직으로 대표되는 전자는 익숙해질 법하면 2-3년마다 자리를 갈아 끼운다. 루틴 하지 않게 항상 긴장감을 가지고 일하라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런 조직일수록 대부분 전문성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매번 바뀌는 업무가 주는 신선함이 장점이라지만 점차 세분화되고 전문성을 강조하는 요즘 시대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어차피 바뀌기에 굳이 관계를 돈독히 해둘 필요도 없다. 이건 사람마다 장단의 기준이 다르니 뭐.

기업의 경우 케바케이긴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가능한 입사한 팀에서 퇴사시키는 것으로 흐름이 정해진 것 같다. 5년 이상 같은 멤버가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이라면 전문성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을 넘어서려는 이들이 프로젝트를 매년 디벨롭할 수 있다. 물론 익숙함이 주는 월급루팡의 등장 가능성도 배재할 순 없지만, 이는 이대로 잘 관리해야 할 일이다. 멤버를 바꾸지 않는 조직은 눈빛만 보아도 아는 사이가 된다는 점이 강점이긴 하지만 이 관계가 틀어질 경우 돌이킬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대부분의 비영리, 사회복지 조직은 후자가 되고 싶은 전자다. 전문성을 그렇게나 강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경험을 강조한다. 현지 비영리 조직의 리더들은 대부분 주니어 시절 직군을 옮겨 다니며 얻은 경험이 현재의 자산이 되었기에 보다 다양한 경험을 강조한다. 아쉽게도 이러한 경험이 앞서기에 대부분의 비영리 조직은 전문성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전문가의 영역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매년 사업, 마케팅을 넘어 인사/재무/시설관리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돌리는데 거기서 무슨 전문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결국 현재까지의 비영리 조직에서 스페셜리스트는 또 말에 그치고 만다. 별 수 없이 우리는 모든 걸 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비영리 마케터로의 정체성을 가진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다. 내가 지휘하는 팀 또한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그를 잡고 싶지만 결국 제네럴 리스트가 되어야 하는 현실을 내가 넘어서진 못할 것 같아 보인다. 그걸 알기에 쉬 그에게 손 내밀지도 못하겠다.


그가 우리를 떠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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