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파랑> 천선란 저
사전 정보라고는 꽤 유명한 책, 그리고 한국 과학 문학상을 받은 책이라는 것 뿐이었다. 제목부터 생소한 <천 개의 파랑>, 숫자가 셀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도대체 이건 무슨 책일까. 꽤 예전부터 궁금했지만 이제야 책을 꺼내 들었다.
아직은 귀여운 수준이겠지만 팔로워가 늘어나고 좋아요가 쌓일수록 내가 읽고 싶은 책보다 읽어야 하는 책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매월 꽤 많은 양의 책이 택배로 배달되는데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이젠 조금 걱정되는 수준까지 왔다. 가려 받아야 하나, 돈을 받아야 하나.. 고민이 깊어지려는 찰나. 나는 <천 개의 파랑>을 만났다.
SF 소설이라 명명하는 소설은 이제 경주마 투데이와 그의 기수 콜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과학이 발달하고 경마 기수들이 자꾸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하자 사람들은 휴머노이드 기수를 만들어 경마를 즐긴다. 콜리도 이렇게 생산된 휴머노이드 이지만 연구원의 실수로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만다. 다양한 감정으로 경주하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경주마 투데이를 위해 기꺼이 말에서 뛰어내린다.
어느덧 경주마로의 명을 다한 투데이처럼 고물이 되어 폐기만을 기다리는 콜리는 연재의 손에 발견되어 그녀에게 수리 받는다.(당한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연재는 콜리를 80만 원에 구입한다) 그리고 연재에게 수리받은 콜리는 하반신 불구인 언니 은혜와 남편을 잃고 홀로 두 자녀를 키우는 엄마 보경과 또 다른 가족이 되는데 각자의 상처와 상실을 가진 이들의 만남은 대화를 통해, 그 삶의 부대낌을 통해 서로를 구원한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콜리의 경주마 투데이의 마지막 경주를 돕는다.
청소년 소설이라는 딱지도 붙어있던 게, 이렇게 작고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예쁜 사람들이 이루는 하모니는 꽤 마음을 단단하게 해준다. 사실 꽤 많이 울었다.
어느 리뷰에서 느리고, 다치고, 선하고, 작은 이들의 연대라는 글을 먼저 보았다. 이만큼 적확하게 이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 책은 SF 소설인데 휴머노이드가 나오는 미래의 일이어서 SF가 아니라 이젠 이 땅에 없을 것만 같은 느리고, 다치고, 선하고, 작은 이들의 연대가 꼭 SF 일 것 같아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가운데, 한없이 작고 예쁜 내 고양이가 자꾸 눈 앞에 아른거려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 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 (전자책 p.301)
마지막으로 투데이와 함께 달리고 낙마하는 콜리의 마지막 장면이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무엇을 남기고 싶어 하는가. 콜리는 내게도 정답을 알려주었다. 나는 내년에도 아니 그 이듬해에도 꾸준히 읽을 것이고, 나의 앎을 누군가와 나눌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