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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짱고영화

어른들이 쌓아올린 개미지옥

영화 <다음 소희>

by 짱고아빠

소희는 늘 이어폰을 끼고 춤을 춘다. 소희에게만 들리는 음악, 소희에게만 보이는 세상.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에게 소희는 이상한 아이다. 춤을 춘다는 건 알겠는데 혼자 쓰러지고 짜증 내고 같은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영화의 시작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춤은 소희가 죽고 난 이후 완성된다. 그리고 세상에 단 한 명, 소희의 편에서 아이의 죽음에 분노한 유진에게만 보여진다.


영화는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세상에 던져진 소녀의 이야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중 계약서를 작성하고 최저임금도 못 받고 아웃바운드 콜 업무를 담당하던 소희는 실적의 압박으로 인해 자살한 팀장과 이 일을 덮기 위해 조직적 은폐를 시도하는 회사에 아니 이런게 사회라는 것에 절망한다. 소희는 회사가 내미는 입단속 각서에 마지막으로 사인한다.


이후 소희는 회사의 개처럼 일한다.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 일을 선택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를 이용만 하려 든다. 약속한 인센티브는 주지 않고 학교는 그저 아이의 취업률이 중요할 뿐 아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이 없다. 이는 사실 부모도 마찬가지다. 그저 열심히 하라는 말만 되뇔 뿐 아이는 또 다시 방치된다.


착취와 부조리를 견디지 못한 소희는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우연히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된 경찰 유진은 모두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세상에 ‘애가 죽었는데 왜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냐’고 분노하지만, 회사는 매출에 피해를 입었고, 학교는 취업률이 떨어졌으며, 노동부는 이중 계약서는 모르는 일이고, 교육청은 나 같은 장학사가 뭘 할 수 있겠냐며 어지간히 하라고 되려 사건을 파헤치는 유진을 고립시킨다. 심지어 경찰 내부에서도 문제아의 자살을 왜 자꾸 키우냐며 불만이 터져 나온다.


영화는 전반부 소희의 이야기와 후반부 유진의 이야기로 나뉘며, 소희는 팀장의 죽음으로, 유진은 소희의 죽음을 계기로 다른 사람이 된다. 영화 제목이 말하는 다음 소희가 유진이 아니길 그녀 역시 죽음을 선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랐다.


제목이 다음 소희다. 이미 소희는 죽고 없으니 다음 차례의 소희는 누구일까. 어른들이 인센티브로 쌓아 올린 개미지옥에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을 처넣을 것인가. 영화는 2017년 전주 엘지 유플러스 외주 콜센터였던 LB휴넷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며 당시 엘지유플러스의 대답은 ‘강요하지 않았다’ ‘앞으로 재발하지 않게 신경 쓰겠다‘ 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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