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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짱고영화

그들은 왜 Not my Ariel을 외쳤나

<인어공주>

by 짱고아빠

디즈니는 꾸준히 고전 애니를 실사화하는 라이브액션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급속도로 발전된 CG는 불가능해 보였던 <미녀와 야수>, <알라딘> 심지어 <라이온킹>도 실사화에 성공하며 디즈니는 픽사나 마블의 도움 없이도 왕국을 지켜낼 능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그런데 <인어공주>가 망했다. 캐스팅 단계부터 사람들은 PC주의로 망할 거라 했지만 그들은 사람들의 손가락보다 그들의 역량을 믿었고, 그 결과 <인어공주>는 대차게 망했다. 그 덕에 나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인어공주를 디즈니플러스에서 만났다.


사실 <인어공주>는 망해서는 안되고 망하기도 어려운 작품이다. 디즈니의 공주 라인업에서 애리얼은 언제나 맨 앞줄 놓일 정도로 실제로 사랑받는 캐릭터다. 안데르센 원작의 엔딩을 살짝 비틀어 누가 보아도 행복할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뿐더러, 말썽꾸러기 틴에이저 공주님. 사랑을 쫓아 앞뒤 재지 않고 자신을 던지는 이 직진밖에 모르는 매력덩어리를 거부할 재간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디즈니 최고의 아웃풋인 <under the sea>라는 대곡을 보유한 드라마가 실제로 망해버렸다.



1.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란 인종, 성별, 종교, 성적 지향 등 소수자를 향한 편견 섞인 표현을 사용하지 말자는 입장이다. 꽤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런 입장이 채택된 건 꽤 최근의 일이다. 심지어 디즈니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자면 디즈니의 작품은 언제나 백인의, 예쁘고 잘생긴, 공주와 왕자 이야기였다. 이에 소수자의 인권이 조명되던 시점부터 디즈니는 이런 PC주의의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실례로 드림웍스의 <슈렉>의 엔딩에서 <미녀와 야수>를 비튼 피오나 공주가 슈렉으로 변하는 장면은 세간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2. '그래서 왕자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엔딩 일변도이던 디즈니의 작품들이 변한 것은 아마도 <슈렉>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이는 <픽사>와의 합병이 이루어지며 급속도로 변하기도 했는데, <겨울왕국>부터 <토이스토리>, <카>, <월E> 등 미친 라인업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며 디즈니의 소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엔딩은 고전에 한정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들은 정말로 좋은 이야기를 만들었고, <마블>을 품에 안으며 외형의 확장도 완성했다. 역시 디즈니. 그들은 다시 무너지지 않을 왕국을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인어공주> 제작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은 대중의 이해와는 다른 결정을 해버리고 만다.


3. 단순히 애리얼이 흑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들을 PC주의에 경도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이 타당할까란 질문이 사실 내게도 있었다. 실제로 흑인 인어공주에 긍정적 시각도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롭 마셜 감독은 오디션에서 베일리를 능가하는 참가자가 없었다고 밝혔고, 사실 베일리의 음악은 흠잡을 데가 없긴 했다.


4. 그렇지만 극에는 자꾸 눈에 거슬리는 장면들이 있었다. 애리얼의 6자매들은 자로 잰 듯이 둘, 둘, 둘(백인, 동양인, 흑인)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인어와 사람들이 떼로 등장하는 장면도 그러하다. 세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기계적으로 모든 인종의 비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티가 너무너무너무 나서 오히려 어색해 미칠 지경이었다.


5. 더 큰 문제는 애리얼은 미국인들에게 그렇게 함부로 변주를 줘선 안될 콘텐츠였다는 점이다. 디즈니의 판단 미스(?)는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정확히 사람들은 흑인 공주를 싫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어린 시절 추억 속의 애리얼이 사라지는 걸 싫어했다. 흑인 인어공주가 발표되고 사람들의 해시태그는 NotMyAriel 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추억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지 트럼프의 백인우월주의를 드러낸 것이 아니었다.


6. 심지어 애리얼은 백인을 상징하는 캐릭터도 아니었다. 애리얼의 상징인 빨간 머리는 진저(ginger)라 불리며 성욕, 저속, 똥고집을 의미하는 또 다른 차별과 편견의 상징이었다. 가롯 유다의 머리가 빨간색이었다 일컬어지며 배신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가난한 아일랜드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했다. 빨간 머리 애리얼의 승리는 이러한 차별을 이겨내는 포지션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디즈니는 애리얼을 흑인으로 바꾸며 또 다른 차별을 지워버렸다.

극 후반 마녀가 애리얼을 '빨간 머리'라고 부르는 대사가 한번 있었는데 현웃이 터졌다. 야 니 눈에는 저게 빨간 머리로 보이냐?(극 중 인어공주의 머리는 드레드락인데 이는 흑인다움을 나타내고 싶어 했던 할리 베일리의 고집이었다고도 한다)


7. <라이온킹>의 놀라운 CG를 경험한 이들이라면 <인어공주>가 보여줄 바닷 속 세상도 기대했을 것이다. 나는 그랬다. 그런데 <아바타2:물의길>을 봐서 그랬나. 마치 죠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시종일관 어두컴컴한 바닷길은 그들이 콘텐츠적으로도 실패했음을 보여줬다.


8. 어쨌거나 <인어공주>는 망했다. 실사화에 실패했다고 함부로 단정 지을 순 없으나 사람들의 공감과 찬사를 이끌어내는 데는 분명히 실패했다. 콘텐츠를 만들며 하게 되는 큰 실수가 어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계적으로 콘텐츠를 나열하는 것 그리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에게 어떠한 가르침을 주려 하는 것인데 디즈니가 취한 PC주의는 그간 쌓아온 것을 한방에 무너뜨리는 어색한 <인어공주>를 만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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