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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pr 17. 2023

고양이가 집사를 간호하는 법

#13. 일어나 캔 따줘야지

자취생이 서글픈 순간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 제일이, 아픈데 옆에 아무도 없을 때다. 20년의 자취경력 상 하필이면 이럴 때마다 가족들은 섭섭하리만큼 연락이 되지 않으며, 잘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연락할만한 친구들은 여행을 떠나거나 좀 서먹한 사이가 되었으며, 일은 또 미친 듯이 많다.


그날도 그랬다. 12월의 어느 날. 연말이라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야근이 많아서 그랬나. 전주부터 목이 칼칼하더니 그날 아침은 거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 집 고양이는 겨우 침대에서 몸을 끌고 나오는 나를 걱정스레 보고 있었고, 일단 출근해서 병원 가고 약 먹고 그러면 좀 나을 거라 생각하고 툭 현관문을 열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내 얼굴을 본 팀장님의 첫마디가 ‘집에 가라’였다. 나중에 듣자 하니 그렇게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운전하겠나 싶어 본인이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닌가 노심초사하셨단다.


나름 금강불괴랍시고 안 아프고 살아온 게 자랑이었는데, 사무실에서 쫓겨나니 갈 데라곤 병원밖에 없었다. 채 문을 열지도 않는 병원 주차장에 차대고 그대로 운전석에서 정신을 놓고 있다 병원 문을 열자마자 첫 번째로 진료를 받았다.


- 어휴 이 몸으로 출근을 하셨다고요? 대단하다 대단해. 주사 맞고 5일 치 약 지어 드릴 테니 집에서 무조건 쉬세요. 주말에도 꼼짝 앉고 쉬셔야 합니다.

- 네. 크헉(괴물목소리)

- ㅉㅉㅉ


주사도 맞고, 약도 받고, 혹시나 싶어 본죽도 사다 집에 들어가 그 길로 저녁까지 내리 자버렸다. 보통 이렇게 쉬고 나면 열도 떨어지고, 배도 고프고 그래야 하는데 뭔가 제대로 잘못되었는지 그날은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사온 죽을 대강 먹고는 받아온 약을 삼켰다. 약통 어딘가에 있던 게보린과 판콜도 먹어버렸다. 이렇게 하면 더 빨리 나을까 싶어서.


또 몇 시간이 흘렀고, 기침이 심해서 도저히 누워있기 힘들었다. 몇 시나 되었을까.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다가 나는 보았다. 머리맡에 얌전히 앉아 나를 조심스레 바라보는 내 고양이를. 예쁜 고양이다. 괜찮아 괜찮아. 두어 번 머리를 쓰다듬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괜찮아 인마 나 안 죽어.

너무 오래 누워있었나 싶어 거실로 나가 소파에 푹 몸을 던졌다.


- 휴


오늘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든 연락하고 싶은 밤. 그렇게 소파에 몸을 묻고 깊게 숨을 내쉬는데 와르르. 이 놈의 고양이가 또 사고를 친다. 야 아플 때는 쫌... 그리고 나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 장면을 보았다.


쓰레기통을 냅다 쏟아버린 고양이는 쓰레기 더미에서 어젯밤 내가 먹다 버린 판콜병을 찾아냈다. 그리고 병의 주둥이를 앙 물고는 내 앞에 톡 떨궈놓았다.


- 떼구르르..


빈병이 내 발자락에서 굴렀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와 이 새끼 진짜 사람 아닐까. 속도 모르는 고양이는 그 빈병과 나를 번갈아가면서 보았다.


- 냥(먹어.)


평소에 말도 없던 고양이가 말도 걸어준다. 약통에서 새 판콜을 꺼내 또 마셨다. 쓰레기를 다시 쓰레기통에 곱게 모아 넣고 다시 침대로 파고들었다.


짱고는 침대에 누우면 으레 오른쪽에 같이 누워 머리를 들이밀고 내 오른팔을 네 발로 감싸 안는다. 그렇게 자연스레 내 오른손이 제 머리에 가게 만들고는 그 자세로 골골송을 부르며 잠들곤 한다. 그제야 이 고양이는 내 오른팔을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다 괜찮아질 거라는 듯.


여러분 고양이가 이래요. 고양이 키우세요.

옛다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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