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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pr 21. 2023

고양이는 프라다도 입지 않더라

#14. 고양이 옷입히기

고양이를 키우기 전 로망이 (내가 보기에) 예쁜 옷을 입히는 거였다. 그 동물이 개가 아닌 고양이로 결정되고 산책은 포기했지만 뭐 집에서 입으면 되지.


아깽이시절 당장 뭐라도 입히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지만 몸집이 좀 크고 난 다음에야 옷을 사는 게 아무래도 좋을거 같아서 일년을 꾹꾹 참고 기다렸다. 비싸고 예쁜 옷을 사 입히고 싶은데 아이가 자꾸 크니까 못 사주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건가 하며 얼른 크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일년째 되던날, 난 캡틴아메리카, 슈퍼맨, 그리고 보스턴 후드티 XL사이즈를 세 벌이나 질러버렸다. 후훗.


당시 초보집사였던 나는 까맣게 몰랐다. 고양이들이 이렇게까지 옷 입기를 싫어한다는 걸....  


#1차시도


그렇게 안입겠다고 버티는 걸 낑낑대며 머리와 앞발을 집어넣었다. 슈퍼맨 착장. 당장이라도 지구를 지키기 위해 뛰어오를 것 같은 내 고양이가 얼마나 늠름해 보이던지. 하지만 신나하는 건 집사 뿐. 갑자기 이 놈의 고양이는 오른쪽 앞발과 오른쪽 뒷발을 함께 내딛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걸음걸이. 와 고양이가 고장난다는 게 이런건가. 눈은 또 왜 그렁그렁인데.

겨우 입힌 옷을 겨우 벗겼다. 그제야 자유를 찾은 고양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내 무릎에 쏙 올라와 머리를 디밀었다.


야 말로할때 벗겨라 : 왼쪽이 협박모드 / 오른쪽이 장화신은 고양이 모드


#2차시도


털갈이가 시작되던 어느날, 스케일링 하는 김에 미용해서 온몸의 털을 싹 밀어버린 적이 있다. 고양이가 추워할 수 있으니 옷을 입히는 게 좋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의견에 집에와 마취가 진정되자마자 보스턴 후드티를 뒤집어 씌웠다. 그럼 추울때는 후드티지. 심지어 멋쟁이의 상징 보스턴 후드티. 그리고 짱고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알았어 벗어 임마 ㅠ_ㅜㅠ

고장난 고양이를 보여주지


#3차시도


어벤져스보고 온날 마블뽕이 차서 저 캡틴코스튬을 그냥 둘 수없었다. 또 싫다고 발버둥쳤지만 일단 입혀보기로 했다. 오 그런데 왠일로 잘 입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입고 하루를 같이 잠도 잤다. 화장실도 잘가고 걷기도 곧잘, 밥도 잘먹는다. 기쁜 마음으로 짱고를 그대로 두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퇴근하고 나는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하고야 만다.

왠일로 옷입고 멀쩡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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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거 어떻게 벗었지?????!!!!!!!!!!!!!


고양이 키우며 몇 가지 미스테리한 부분이 있는데 이 날 일이 제일 미스테리하다. 고양이가 혼자 옷벗을 수 있는 동물인가요? 그것도 침대에 저렇게 이쁘게.


어이없어하는 내게 짱고는 말했다.


-냥(응 안입어)


..


이 녀석들은 지급 그냥 곱게 우리집 한구석에 걸려있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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