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고아빠 Apr 25. 2023

고양이를 걱정하는 모든 순간

#15. 선생님 고양이가 보고 싶어요 엉엉

2020년부터 4년째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사실 코로나 덕에 재택이 많아져서 가족과, 또 고양이와 보낸 시간이 오히려 생각보다 길어진 점도 있다) 코로나 따위 신경 안 쓰는 요즘은 주로 월요일 새벽에 상경해 목요일 저녁에 대구로 내려가는 삶을 살고 있는데, 월요일 새벽마다 가지 말라고 무릎에 앉아 버티는 녀석을 떼놓고 길을 나서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이젠 주양육자가 바뀌어 짱고는 아내에게 먼저 다가간다.(나쁜 놈)


엊그제부터 이틀 째 짱고는 먹을 것을 모두 게워내고 있다. 고양이가 토한다. 사실 10년 차 프로 집사들에게 고양이 토는 대수롭은 일이다. 원래 모든 고양이는 자주 토한다. 헤어볼을 게워내기도 하고, 가끔은 먹은 것을 모양 그대로 세상에 내어 놓기도 한다. 혹은 이도저도 아닌 잘 모르는 이유로 토하기도 하는데 보통 이유를 알 수 없는 집사는 걱정이 돼 미치기 직전까지 가기 마련이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일요일 새벽부터 짱고는 먹은 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한 번은 집사 침대 위, 한 번은 거실 카펫 위 아주 빨래하기 힘든 곳만 골라가며 영역 표시를 시작했다. 뭐 사실 그런 건 괜찮다. 며칠 연속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 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프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10년 차 집사가 되며 토의 모양을 '반드시' 관찰해야 하는데, 짱고는 먹은 사료를 모양 그대로 예쁘게 게워냈다.


이 하얀 이불에다.. 그는 아주 그의 흔적을 제대로 남기셨다

1. 이 경우는 높은 확률로 소화불량이다. 소화불량이래 봐야 사람으로 치면 급체에 속한다. 토하고 나서 빠른 시간 안에 제 컨디션으로 돌아오며 배고프면 또 먹는다. 짱고는 주로 사료를 쌓아두고 먹는 자율급식을 하는 편인데 가끔 급하게 먹어서인지 먹은 모양 그대로 토하곤 하는데 이때마다 작은 그릇에 적당량의 사료를 바닥에 깔고 천천히 먹게 하면 도움이 된다.


2. 사료가 바뀐 것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고양이는 사료에 민감한 편이라 사료를 바꿀 때 보통 바뀔 사료를 기존의 사료에 20% -> 50% -> 70% -? 100% 섞어주는 형태로 사료를 교체하기를 권한다. 물론 우리 집 똥냥이는 아무 사료나 잘 먹는 편이어서 지난 10년간 한 번도 저 수고를 한 적은 없다. 그리고 이미 사료가 온 지 한 달이나 지났는지 이제야 사료 갈이를 할리가.. 설마.


3. 이 밖에 다른 스트레스가 있을 수 있다. 한 주 전 미용을 했는데 이게 어떤 스트레스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긴 짱고는 병원 가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가 크다. 어릴 적엔 캐리어를 보면 후다닥 숨기 바빴지만, 10년 차 고양이가 된 지금은 캐리어를 보면 멀뚱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 돌아 침대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오지 않는다.


*이건 사료를 토했을 경우이고, 헤어볼, 사료 이외 다른 것을 토했을 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잘 없지만 만에 하나 내 고양이가 노묘이고 불그스름한 것들을 토했을 경우는 볼 것 없이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이 경우 고양이의 움직임이 상당히 느려졌을 것이며, 잘 먹지도 싸지도 않을 확률이 높다. 병명은 의사 선생님이 정확히 알려주시겠지만 꽤 큰 문제가 발생했을 확률이 제법 높다.


일요일에 먹을 것을 게워내고는, 월요일에 제발 토하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월요일에 퇴근한 아내가 똑같이 토한 사진을 보냈다. 이번엔 저가 좋아하는 이불 위다. 하필이면 수업 중에 온 문자에 괜찮냐고 그렇게 문자를 보내도 돌아오는 답이 없다. 10분만 연락이 늦었어도 서울역으로 달려갈 태세 정도가 아니라 이미 가방을 싸고 있었다.

그제야 온 문자. 하도 토사를 밟고 돌아다녀서 온 집에 냄새가 그득해 청소하느라 못 봤다고 한다. 그리고 이놈의 고양이는 청소하는 내도록 만져달라고 졸졸 따려다녔다고.


청소와 빨래까지 마치고 소파에 앉으니 쪼르륵 따라와 무릎 위에 앉아 골골대며 꾹꾹이를 하더란다. 기다렸다는 듯이. 고양이도 나이가 들면 애가 되는 걸까. 다행히 컨디션은 정상인 것 같아 한시름 놓았다. 확인해 보니 감자. 맛동산 가리지 않고 싸기도 잘 쌌단다. 그렇게 토했는데 어떻게 싼 거지? 싶다가도 마음이 후드드득 놓였다.


하지만 이틀이나 토하는 꼴을 더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작은 그릇에다 사료를 넓게 펴서 깔고 심지어 물에 불려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습식 따위 먹지 않는 고양이지만(캔사료도 안 먹음) 더 이상 토하는 꼴을 볼 수 없었다. 먹던지 굶던지. 집사는 때로는 단호해져야 한다.


여전히 나는 서울에 있고, 고양이는 대구에 있다. 고양이가 보고 싶다.

오늘은 제발 무사히 넘어가야 할 텐데. 마음이 마음이 아니다.


토든 뭐든 다 해도 되니 아프지마 제발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이는 프라다도 입지 않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