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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May 03. 2023

오랜만에 만난 서로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저

제목을 읽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별일 없지?'는 나도 종종 오랜만에 만난 누군가에게 쉽게 묻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딱히 그의 삶이 궁금하거나 한건 아니다. 아니 그렇다고 명절에 건네는 큰아버지의 인사처럼 무성의 한 인사도 아니다. 약간의 관심, 하지만 너의 세계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약간의 주저. 눈앞의 상대에게 건네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호의다.

 '별일 없지?'라는 질문에 대부분은 '응 별일 없지 뭐'하고 씩 웃고 만다. 응 나 그냥저냥 잘 버티고 있어. 아직은 괜찮아.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잘 견디고 있다며 건네는 인사. 생각하면 할 수록 '별일은 없고요?'라는 제목은 그 음절 하나하나가 따뜻하다. 꽤 오래 만나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정했던 누군가가 지금의 퍽퍽한 내게 찾아와 건네는 조심스럽지만 마음을 담은 말처럼.


고등학교 때 소설은 '발단-전개-위기-절정'으로 이루어진다고 교과서에 써 있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드는 의문이 내가 즐겨 읽던 소설 들에는 '위기' 따위 없는 것 같은데 저건 대체 누가 무슨 기준으로 정해둔 것일까? 언어영역 만큼은 꽤 자신 있었던 나도 저 문제 앞에서는 꽤 소심 해졌다. 없는 위기를 찾으려니 꽤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다들 좀 평화롭게 살면 어디 덧나나.

책에 나오는 8가지의 에피소드들도 그렇다. 내가 너무 나이브 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는 제 각각의 삶에 딱히 위기 같은 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아니 우리 모두는 누군가와 헤어졌다가 만난다. 그 누군가는 가족이기도 하고, 헤어진 옛 연인이기도 하다. 심지어 어제 잠깐 만났던 누군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 안부라는 것도 사실 시시콜콜한 우리네 일상의 한 부분이다. 죽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로또에 당첨되는 것 같은 인생이 송두리 채 바뀔 일은 어차피 우리 삶에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삶을 아침에 일어나고, 출근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일상을 산다. 그 일상 속에 작은 다툼이 있기도 하고, 때론 속상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시시콜콜한 일상을 SNS에 중계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일상을 굳이 노출하지 않는다. 매일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매일 다른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오가며 언젠가 만났던 다정한 사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다양한 군상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묻는다. '별일은 없고요?'


뭐랄까. 따뜻한데 왜 따뜻한지는 도무지 모르겠는 소설은 오랜만이다. 그런데 굉장히 오랫동안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차 마시는 동안 유튜브 대신 한 쳅터씩 다시 꺼내볼 것만 같다. 괜히 몽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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