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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May 08. 2023

길을 잃어본 적이 있었나요?

<당신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필요한가요?> 김지선 저

산티아고를 처음 알게 된 건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였지만 산티아고에 나도 가야겠다고 결심한 건 <나의 산티아고>라는 영화였다. 오래전이라 내용이 가물가물 하지만, 잘 나가던 셀럽이었던 주인공이 과로로 쓰러지며 얻게 된 의도치 않은 휴가에 돌연 산티아고로 떠나 처음 겪는 불편하고 낯선 환경, 가끔 길에서 자신을 알아보는(혹은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을 만나 우정을 쌓기도 하고, 끝내 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신과 본연의 자신과 조우하는 하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이때부터 산티아고에 열광하며 산티아고가 나오는 책이며 영화며 TV프로그램을 다 섭렵했던 것 같다. 산티아고에 다녀온 이들에게는 묘한 내적 친밀감을 느끼기도 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어떤 이들에게는 트래킹 코스처럼 알려져 관광지처럼 단체관광으로 이 곳을 찾는 이도 많다지만, 까미노는 그 이름처럼 순례하는 사람들의 길이다. 살다 어느 순간 잠깐 멈춰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다시 찾는 이들이(그것이 신일수도 혹은 다른 무엇일 수도) 짧게는 일주일 혹은 한 달 가까이 모든 걸 내려놓고 삶을 되짚어가는 길.


-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싶었는지

걷다 보면 길이 알려 줄 것 같아 계속 걸었다.


길을 잃어 본 적이 있었나.

누군가에게 이 길이 옳은 길인지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

잘못된 길을 계속 걸었던 적도 있지 않았나.


살면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라면

목적지를 몰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라면

당신도 지금 산티아고 순례길이 필요한 것일지 모르겠다.

-


저자는 이 한 문장으로 나를 까미노로 이끌었다. 책은 저자가 걸은 산티아고 이야기다. 길을 잃었다가 돌아왔을 때 더 멀리 가지 않음을 안도하던, 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엉뚱한 곳에서 만난 인연과 우연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길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혹은 한 번은 또 보고 싶었는데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 이 길 끝에 목적지가 있을 거라고 알고 있지만 끊임 없이 의심하고 지친 육체를 다시 다잡아 길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

그의 발자취를 따라 산티아고를 걷다 문득 삶을 고민하고 나를 생각했던 적이 언제였었나 했다. 삶에 바빠서, 일에 치여서 내가 누구인지조차 잃어버린 채, 입으로만 신을 나의 길이라 고백하며 그에게 등 돌리고 살고 있지는 않았었나.


저자의 산티아고를 따라가며 혹시나 나도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남은 스케줄을 확인했다. 올해는 까미노를 걸을 수 있을까? 확실히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그런데 어제 본 유튜브 영상에서 하와이의 헬기 운전사가 물었다. '당신은 두 달 전 오늘, 당신이 하와이에 있을 것을 알았나요?' 그랬다. 우리는 모든 걸 아는 척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뭐 또 혹시 아는가. 한 달 뒤에 내가 산티아고에 서 있을지도.


'당신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필요한가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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