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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May 16. 2023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 하나요?

<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  케이트 서머스케일 저

1. 희한한 책이었다. 예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의 소품에서 출발해서 출간되어버린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 사전> 같은 느낌이랄까.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중간중간 삽화까지 하여튼 뭔가 달랐다. 와 뭐 이런 책이 있지.

2. 책은 각종 공포와 그에 따른 광기, 혐오를 설명한 책이다. 인간은 참으로 다양한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데 그것을 99가지로 정리하였다.(99가지 ㅋㅋ 하.. 디테일 보소)

3. 생각해 보니 나도 개나 고양이를 꽤 무서워했던 경험이 있다. 지금은 짖는 댕댕이들을 만나기 어렵지만 예전에 마당에 하나씩 묶여있던 개들은 낯선 이를 보면 그렇게 짖어쟀다. 어릴 적 그 녀석들 중 하나가 나를 발견했고 목줄 풀린 개에게 꽤 심하게 쫓긴 기억이 있는데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개만 보면 피해 다녔고 이 공포증에서 벗어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양이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은데 공포까지는 아니었지만 담벼락에서 눈만 반짝이는 이 동물을 나는 썩 유쾌해 하지 않았는데, 뭐 이 공포증들은 고양이를 키우고 얼마 안 있어 사라져버렸다. 

4.“귀신망상”. 어릴 때 내 방 불을 끄면 창밖에서 들어오는 어스름한 불빛에 옷 그림자가 귀신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 그림자 귀신을 쫓기 위해 그렇게도 주기도문을 열심히 외다 잠들곤 했다. 귀신 이야기를 어쩌다 접하게 된 날은 그 귀신들이 방안 구석구석에서 튀어나왔다. 책상 밑, 거울 속, 고개를 숙이면 내 등 뒤에서.. 종류도 다양했다. 빨간 마스크, 이순신, 김민지 등등 하긴 이 녀석들은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나타난다.

5. 인류의 2% 정도가 “물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에 들어가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단다. 나도 물에 대한 공포가 있다. 어릴 적 계곡에 빠졌을 때 물속에서 정신을 놓았고 지나가던 분이 건져 인공호흡까지 하고야 의식을 찾았다고 한다. 그때를 회상하면 물에 빠졌다는 두려움, 인공호흡 이후 '살았구나'라고 한숨 돌린 기억만 있었는데, 이 지독한 물 공포증을 해결 하겠다며 수영을 배우다 그 당시 물에 빠졌을 때의 순간이 갑자기 떠오른 적이 있다. 트라우마. 수영장 물에 빠져버렸고, 다른 사람들의 부축에 의해 밖으로 나와 한동안 숨을 못 쉬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그렇게 나는 평생 수영을 못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놈의 고집은 나를 수영장으로 이끌었고, 어떻게 수영을 배워버렸다. 물론 아직도 물 밖의 선생님은 내 자유형을 보고 고개를 더 물 속으로 넣으라고 한다. 그런데 그건 참 되지 않더라.

6. 2003년 여성의 가슴이 동그란 구멍이 숭숭 나있는 사진이 커뮤니티에 꽤 돈 적이 있었다. 이 사진은 나중에 연꽃씨와 가슴의 합성사진으로 밝혀졌는데 이후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동그란 그림 혹은 비슷한 사진은 커뮤니티에 한동안 떠돌았고 이런 패턴에 공포를 느낀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나도 포함, 그런 사진을 보면 울렁거림) 그런데 “환 공포증”이라는 단어가 이때 만들어진 단어라는 걸 아는가?

7. 저자는 이런 기본적인 두려움 뿐 아니라 현대인, 아니 정확히는 최근에 발생하게 된 “콜포비아”나 “휴대전화 부재 공포증”에 대해서도 다룬다. 20대의 76%가 전화벨이 울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있지 않은 순간도 그러다. “발표 공포증”이나 “비웃음 공포증”도 그러한데 문득 언젠가부터 포스팅의 맺음말 '반박 시 니 말이 맞음' 이 떠올랐다. 나아가 저자는 우울, 색정, 음주, 허언 중같이 이제는 사회문제가 되어버린 현상들도 공포의 관점에서 다룬다.

8. 재미있는 공포증도 있다. 스티브 잡스에게 있었다는 “단추 공포증”, 아시아권에만 있다는 “숫자 4공포증”, 영화가 양산한 “숫자 13공포증”, 쩝쩝 소리에 기절하는 “소리 공포증”,  풍선이 언제 터질까 두려워하는 “풍선 공포증”도 있다는데, 언젠가 소지섭이 TV프로그램에서 이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외국 사람이 쓴 책에 소지섭 이서 왜 나와?;;

9. 미국 행동주의 심리학자 왓슨은 '두려움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리 학습되는 것(p.145)'이라고 했다. 우리가 가지는 공포와 불안은 태어날 때 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심리학자들 마다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기는 하나 사실 큰 틀에서 우리는 낯선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이 감정 자체는 사실 나쁘거나 잘못된 일이 아니다. 

저자가 언급한 99개의 공포 중 어떤 것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또 어떤 것은 개인이 치료해야 할 종류로 구분되는데 문제는 마주하지 않고 사회적 혐오로 변질되어 버린 공포에 관한 것들이다.(“호모포비아”나 “외국인 혐오증” 우리나라의 경우 “이슬람포비아”도 포함될 수 있다) 나아가 그 혐오를 정당화 하기 위해 혐오의 시작을 공포가 아닌 진리나 당위에 관한 것으로 포장하기 시작할 때 공동체는 크게 무너지거나 흔들리고 만다.

10. 책은 흥미롭게 시작하지만 꽤 큰 함의를 던진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두려움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오랜만에 만나는 즐거운 꽤 자극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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