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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May 22. 2023

파란 나라를 보았니?

<바늘 끝에 사람이> 전혜진 저

2002년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고조선까지 확장하더라도 기록될 법한 해였다.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고, 아마 내 평생에 다시 못 볼,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올랐다. 또 영원한 우승후보였으나 단 한차례도 우승의 기억이 없는 삼성 라이온즈가 처음으로 프로야구 우승을 거머쥔 해이기도 하고, 모두가 질 거라고 예측했던 노무현 후보가 0의 확률을 뚫고 기적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해이기도 하다.

당시 대학교 2학년이던 내게도 2002년은 중요한 시간이었다. 복지를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니체와 맑스에 미쳐 실존주의와 사회주의를 그렇게나 떠들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앞 열람실에 앉아 신문을 폈는데 믿기 힘든 기사를 보았다. '미군 장갑차에 치여 우리 학생 두 명이 사망했다고'  그런데 그것이 전부였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왜 같은 육하원칙 따위야 상관없다는 듯한 단신. 아니 이게 이렇게 작은 일인가? 당시 원활하지 않던 인터넷을 찾아 뒤지기 시작했다. 월드컵이 끝나자 몇몇 언론들이 이를 본격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는데, 가해자들은 한국이 아닌 미군정에서 재판받고 무죄를 선고 받았다. 교통사고 였고 운전자는 아이들을 인지하지 못했다. 끝. 그들은 미국으로 돌아갔고 미국 대통령은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하는 한국에 이에 '유감이라'는 한마디만 남겼다. 

당시 이 사건은 내 가치관과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가 알던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 나라는 이 땅에 없었다. 우리나라에 주둔하는 미군은 한국의 아이들을 실수로 죽여도 벌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한국의 재판정에 서지도 않았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었다. 국가가 그렇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감히 미국의 심기를 거스른다며 되려 재판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돌을 던졌다. 미국이 유감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동안 시간은 지났고 이 사건은 모두에게 잊혀졌다. (나도 몰랐던 예전이 비슷한 사건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책은 겉장에 적힌 것처럼 한국전쟁, 제주 4.3, 5.18민주화 항쟁, 한진중공업 사태, 공군 성범죄 등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며 그냥 잊혀지고만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들춰낸다. 처음 이 책을 받아 들 때 읽고 싶지 않았다. 소설이지만 읽으며 분명히 나는 그들을 떠올릴 테고 또 한동안 아파할 테니까. 읽으며 아팠고 슬펐고 아렸다. 그러면서도 다시 그들을 떠올리기 겁이 났다. 아직도.. 그 수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들은 아직도 아파하고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나만 잘 살고 있는 게 미안해서. 미안하면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거 같아서.

돌이켜보면 '사람이 먼저'라는 슬로건으로 당선된 대통령의 세상에서도 어떤 사람은 늘 뒷전이었고, 어떤 사람은 모두에게 존중받았다. 물론 그것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자본주의라 불리는 사회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생존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나도 안다. 나도 매일 치열한 그 싸움을 살아내고 있으니.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 수 있을까. 아직도 파란 나라가 있다고 믿는 이들, 노력한 만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 저들이 가난한 건 그들이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이들, 국가와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싸워 이겨야 하고 내 자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그렇게 얻은 부를 나누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냉혹하고 우리가 설 자리는 좁다. 그래서 권한다. 내 옆의 누군가를 밀쳐내기 보다 함께 손잡고 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건 어떨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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