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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May 23. 2023

당신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집단 착각> 토드 로즈 저

1.10명의 사람들이 원탁에 둘러 앉아있다. 질문자가 첫 번째 사람에게 물었다. ‘1+1은 무엇입니까?‘ ’3이요‘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니 저걸 몰라? 학교를 나오지 않았나..‘ 두 번째 사람에게 물었다. ’1+1은 무엇입니까?‘ ’3이요‘ ㅋㅋㅋ 두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아니 여기는 바보들만 모았나‘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사람도 대답했다. ’3이요‘ 실험자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아홉 번째 사람까지 대답했다. ’3이요‘ 이제 실험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질문자는 마지막으로 실험자에게 물었다. ‘1+1은요?’ 실험자는 대답했다. ‘3이요’

당신은 2라고 말할 수 있는가?

2. 영화 <신세계>는 경찰인 자성(이정재 역)은 조폭집단의 스파이로 활동하며 경찰과 조폭 사이에서 방황하다 결국 조폭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일은 현실에서도 벌어졌는데 FBI 소속의 밥은 조폭을 검거하기 위해 그곳에 들어가 그들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영화 속의 자성은 끊임없는 고민 끝에 자신의 길을 결정했지만 현실의 밥은 그렇지 못했다. 임무가 끝난 뒤 밥은 신체적, 정서적으로 모두 망가져 버렸다. 명예로운 경찰이었던 그는 작전 이후 평생을 조폭들이 자기를 죽이러 오지 않을까 두려움에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한 채 살았다. 작전에 투입된 몇 년 동안 그가 느낀 완전히 다른 두 세계의 충돌, 다른 가치관 속에서의 삶은 그가 알고 믿고 있던 세계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그는 아마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3. 공산주의 국가였던 체코 슬로 바이크에서는 1978년 ‘힘 없는 자들의 힘’이라는 에세이집이 발간된다. 책의 주인공인 청과물 가게 주인은 매일 아침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팻말을 내건다. 사실 가게 주인은 노동자니 단결에 관심 없다. 하지만 공산당과 굳이 적대할 이유가 없었던 그는 어느 날 생각한다. 더 이상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주인의 행동은 단순했다. 단지 팻말 걸기를 하지 않은 것 뿐이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동네의 모든 사람이 주인에게 동조하기 시작했다. 이 일은 책 밖의 체코에서도 일어났다. 저자인 하멜은 감옥에 갇혔지만 이 책의 등장은 체코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 책이 발간되고 10년 뒤 1989년 11월 17일 프라하에서는 거의 백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파업이 시작되고 체코 정부가 국민들에 권력을 이양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24시간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이를 총칼 없는 부드러운 혁명, 즉 벨벳 혁명이라고 부른다.

4. 예전에는 이런 책을 곧 잘 읽었는데 요즘은 궁서체로 쓰인 300페이지 넘어가는 책 앞에 서면 왠지 숨이 막힌다(휴;;). 이 책 <집단 착각>도 그래서 꽤 미루고 미루다 집어 든 책인데 의외로 마지막 장을 덮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려운 주제임에도 문단 구성과 각 챕터의 주제가 확실하여 쉽게 읽힌다. 1부 순응의 함정, 2부 사회적 딜레마, 3부 회복력 수업으로 구성된 책은 각 챕터별로 또 3개의 소문단을 두고 있다. 사실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두꺼운 사회과학 서적들에 좀 질리기도 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진짜 잘 빠졌다.

5. 책에서는 집단 착각의 여러 모양을 보여주지만 결국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집단 착각은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인 테일러가 주창한 엘리트주의라고 꼬집는다. 그는 분명한 소리로 우리에게 요구한다. 당신들은 무력하지 않다. 스스로를 무력한 존재로 몰아가는 모든 것들과 싸워 나가라고. 순응자에게 보상을 주고 반대자에게 벌을 주는 시스템을 거부하고, 약육강식의 사회를 통해 우리 모두를 해치는 시스템의 동조자에서 벗어나라고.

6. 진실을 말해보자. 우리가 함께 풀지 못할 일은 없다. 우리는 그냥 봐서는 보이지 않도록 감추어진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해 답을 이미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서로 다르거나 분열되어 있지 않다.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서로에게 최선의 것을 해주고자 하는 믿음직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가진 사적인 힘을 깨닫고, 조화를 위해 헌신하며, 우리가 믿는 것을 위해 공개적으로 일어나 목소리를 높일 때, 우리는 집단 착각의 안개를 걷어내고 더 나은 사회의 약속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p.380)

7. 오랜만에 꽤 묵직한 책이었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늘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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