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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Jul 23. 2023

어린이만 부릴 수 있는 마법

<어린이의 말> 박애희 저

1. 아무래도 이런 책은 좋은 책이라는 나태주 시인의 말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좋은 책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좋은 사람일 수 밖에 없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박애희 작가님. 좋은 사람이다.


2. 놀이터 하나 변변히 없던 어린 시절, 동네에 큰 부자 아파트 단지 그리고 놀이터가 생겼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층층으로 쌓인 미끄럼이 너무 신기하고 좋아 보였던 나와 내 친구들은 어느 날 그곳에 숨어 놀이동산에나 있었던 그 큰 미끄럼을 탔다. 이윽고 시퍼런 방망이를 들고 나타난 경비 아저씨는 식식거리며 우리를 쫓아냈고, 나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그저 서럽다. 아이가 미끄럼 좀 탄 게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었을 텐데 나는 왜 그때 그렇게 혼났던 것일까.


4. 모두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린 시절이 중요하다고. 거의 모든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그 중요한 어린 시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린이에게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가르치고, 피아노와 태권도 등을 가르쳐 꽉 찬 육각형의 사람을 만들려 한다. 정말 모두가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 그가 잘(돈을 많이 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 살아 본 어른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결과를 우리는 매일 뉴스에서 목도하고 있다.


5. 아이들을 돕는 NGO에서 일하고 있다. TV에 보이는 그들의 한 쪽 면은 가난 앞에서 기를 쓰고 삶을 버티며, 피부색, 성별, 장애에서 오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무수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모습이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지없이 어린이다. 축구공을 좋아하고, 예쁜 인형을 갖고 싶어 하는. 가끔 터무니 없는 무언가가 되고 싶어하는 그런 어린이. 그 눈이 좋아서 나는 자꾸 아프리카를 그리워 한다.


6. 책에는 세상 모든 어린이의 말이 빼곡히 쓰여있다. 그곳에는 빨간 머리 앤도, 허클베리핀도, 시험을 망치고도 환한 사랑스러운 아이와, 웃는 게 너무 예뻤던 에티오피아 아이의 모습도 보였다. 누군가 이 책의 소개에 써놓았듯 크리스마스 트리의 작은 불들이 하나씩 켜지듯 어린이기에 할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리고 글을 볼 수록 행복해진다. 작가는 말한다. 어린이는 어떤 환경에 처해있던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그리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언제나 문제는 그들을 불안하게 하는 어른의 말이고, 그것들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것이 어른의 의무라고 말이다.


7. 얼마 전 집 근처에 큰 아파트가 생겼다. 산책길에 보이는 단지 안 놀이터는 어린 시절의 그것보다 더 크고 화려하고 안전해 보였지만 언제나 텅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이와 엄마가 사이좋게 그네를 타고 있었다. 괜스레 웃음이 났다. 따뜻했다. 이 책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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