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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Jul 24. 2023

왜 사느냐는 질문에 대한
죽음의 대답

<feat.죽음>

어릴 적부터 뭐가 그렇게 불만이었는지 나는 줄곧 죽음을 떠올렸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그림자였는지, 혹 인간이 원래 우울에 빠져 살아가는 모양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그랬다. ‘오늘 내가 사라진다면 누가 슬퍼할까’, ‘기왕 죽는 거라면 고통 없이 한 번에 가면 좋겠다’ ‘제사상 위에서 내 가족, 내 친구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쓸데 없는 공상은 꽤 오래 내 유년시절을 지배했다.

대학에 가서 읽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 공상을 부채질 했다. 죽음만이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라니. 피 끓는 나이에 나는 그런 사랑을 부던히도 찾아 헤멨다. 


마블 히어로물을 애정하는데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끝내 내 무릎을 치게 만들었던 대목도 전쟁신도 아이언맨의 퇴장도 아닌 이 부분이었다. 냉동인간이 되어 수십년의 죽음을 깨고 되돌아온 캡틴은 이 땅에서의 미션을 완수하고, 2차 대전이 한창인 그곳으로 연인 페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떠난다. 영화 속에서 한 순간 할아버지가 된 캡틴의 눈에 후회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사랑을 위해 죽음을 두 번 넘나들었다.


고독사, 냉동인간, 유품, 사고사라는 단어로 생긴 오해 등 다양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한동안 잊어버린 죽음을 다시 생각했다. <퓨처 스트림>은 죽음을 담보로 미래로 가려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기술의 힘을 빌어 우리는 미래에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50년뒤에 지금의 모습으로 눈 뜬 다면 그건 나일까 다른 사람일까? <군산의 감정>은 기다리는 이가 ‘장례식장’에 있다는 오해에서 시작된다. 불륜관계라지만 사랑하는 이가 죽었다. 알고보니 그의 딸의 죽음이지만 그 또한 나 때문인 듯하다. 어떻게 해야할까?

죽음에 얽힌 일곱개의 단편을 읽고 이상하게도 생기는 감정은 죽음이 아니라 아무래도 삶이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죽음을 차용하고, 죽음을 딛고 삶을 다시 그려나간다. 그래서 읽으며 계속 살고 싶어졌다. 지금 내가 무언가를 읽고 사유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 결국 기록은 살아있는 자들의 영유물이며 생이 있는 자의 특권이다.


베르테르가 내민 죽음의 손길을 넘어 이십 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언젠가 그냥 알게 되었다. 삶과 죽음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걸. 살아있어도 이미 죽은 이가 있고, 죽었어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 살면서 죽은 척은 실컷 했으니 이제 죽어도 살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마 실제 내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아마 나는 이렇게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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