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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ug 01. 2023

좋아하는 것을 오래 좋아하기

<온다는 믿음> 정재율 저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진짜 오랜만에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을 서가 곳곳을 다니며 끄집어 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온다는 믿음. 그랬다. 결국 만나야 할 이들은 만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던 적이 있었다.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삶에 바빠서인지 지쳐서인지 모르지만 나는 한때 그토록 갈구했던 것들을 시간이 지나며 더 이상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사랑이던 뭐든, 시간은 늘 새로운 것을 가져다 주었고 나는 그것들과 함께 내 시간을 채워나갔다. 물론 가끔 내가 사무치게 기다렸던 것들이 그리워지거나 그때 그럤다면 어땠을까 하는 순간도 있지만 말 그대로 순간이다. 추억에 젖어있기에 나는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바쁨이 나를 나아가게 했던 원동력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다렸다면, 나는 아마 영원히 거기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흔한 서평 하나 없는 책도 참 오랜만이다 싶으면서, 시집은 늘 이랬다는 걸 다시 떠올렸다. 열차와 우주와 모리키씨가 자주 등장하는 그의 시를 읽으며 지금도 책장에 한번도 꺼내지 않은 DVD 세트인 은하철도 999를 떠올렸다. 철이가 결국 엄마를 만났는지 그게 메텔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그 만화를 꽤 좋아했고 커서도 그 흔적을 찾아 은하철도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었으며 저 DVD 세트를 구매했다. 이제는 DVD플레이어도 없어 본다치면 저걸 어떻게 봐야하나 고민이다.


시집의 마지막 문단에서는 사진에 관한 시인의 일기가 나온다. 사진이란 걸 취미라고 말하는 종족의 일원으로 우리 집에 온 사람은 꼭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규칙과 대를 이어 내려갔다던 필름 카메라 이야기가 좋았다. 지금은 나도 필름을 쓰지 않지만, 그래서 인화해 보관하는 사진도 없지만 우리 집을 방문한 이에게 줄 선물과 언젠가 나의 아이에게 내가 물려줄 것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 또한 좋아하는 것을 오래 좋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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