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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ug 07. 2023

알잘딱깔센

지난해 20개국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영어프레젠테이션(이라고 쓰고 흑역사라 읽는다) 이후 각 잡고 영어공부 중이다. 물론 잘 되지는 않는다. 누가 그랬나.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라고. 엉덩이 무겁기로는 나름 자신 있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 성과가 나야 신날 텐데 영어는 언제쯤 신날 수 있을까. 뭐 아무튼.


지난 6개월간 내 영어 튜터는 소위 알잘딱깔센에 능한 사람이었다. 단어 몇 개만 던져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기가 막히게 캐치했으며, '너 지금 이 말하려고 하는 거지?'라며 나의 문장을 수정해 주었다. 하긴 그러니까 그렇게 인기가 많았겠지. 그가 두 달 전 큰 결정을 했다며 내게 한동안 수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 두 달 동안 여행을 온단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그 할아버지는 한국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하키를 할 수 없지만 롤레스케이트를 탈거라고 말했다. 아마 그는 지금 서울 하늘 어디쯤 있겠지. 그리고 태어나 처음 만나는 더위에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렇게 두 번째 만난 튜터는 미국 여성분이었는데 사실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왜 이 사람의 이야기는 하나도 내 귀에 들리지 않는 걸까. 지난 1년이 무색하게 나의 영어는 다시 0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물론 한 달이나 지난 지금은 조금씩 그녀의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쓰는 단어가 이렇게 다르구나. 와 이렇게 표현한다고? 같은 초보자들이나 하는 소리를 지금 다시 하는 중이다.


애니웨이. 이 두 번째 튜터는 소위 알잘딱깔센을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매번 정확한 문장을 요구한다. 말로는 great, excellent를 외치지만 나는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문장을 끝냈음에도 뭐가 더 나오길 기다리는 그 눈빛이 이제는 부담스럽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또 어떤 튜터를 만날지 알 수 없어서(감히 한국인 클래스에서 인종 차별하는 흑인도 만나 봄) 함부로 바꿔달라기도 애매하다.


오늘도 한참을 무슨 소리했는지 횡설수설하다 10분이 지났다. 그냥 뭐랄까. 알아서 잘 받아주던 선생님이 너무너무 그리워졌다. 하긴 반대로 생각하면 그가 어떤 단어들을 던지던 또 그 문장을 알잘딱깔센 하는 것도 내 능력일진대 그게 그렇게나 어려운 내가 좀 답답해졌다. 알잘딱깔센 이거. 생각보다 큰 능력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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