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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ug 31. 2023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JTBC 최강야구

오랜 야구팬이지만 야구 예능을 잘 보지 않았다. 안 봤다기보다는 시작을 하는 게 좀 부담스럽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콘텐츠는 많고 시간은 없다. 매일 저녁 야구 경기를 보기도 벅찬데 매주 2시간 동안 야구 예능을 본다는 건 바쁜 현대인에게 큰 도전이기도 하다.

그렇게 <최강 야구>를 멀리하다 문득 어느 날 케이블에서 나오는 최강 야구를 보고 있었다. 역주행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넷플릭스를 틀면 되는거였으니까.


그리고 보니 동년배의 꽤 많은 야구팬들이 <최강 야구> 매니아였다. 일반 야구 저지와 똑같은 비용의 유니폼을 입고 월요일 저녁에 TV 앞에 앉는다고 한다. 이따금 직관 경기 예매 사이트가 열리는 날은 아이돌 콘서트 티켓 구입을 방불케하는 광클 대전이 벌어진다. 올해 열린 세 차례의 직관(네 차례의 예매)는 모두 매진이었다. 심지어 <최강 야구>팝업스토어는 가장 핫하다는 더현대서울에도 상륙했다. 이미 한물간 선수들의 야구 경기가 도대체 왜?


1. 최강 야구 장시원 PD는 야구광으로 유명하다. 좋아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는 걸 콘텐츠로 만들 때 그 파워는 배가된다. 가령 김성근 감독이 영입되었을 때 프로에서부터 정근우 선수가 입단하는 팀에 김성근 감독이 따라와 훈련(김성근 감독은 죽도록 훈련시키기로 유명하다) 시켰던 이야기를 '중이 떠났는데 절이 따라오더라'라는 밈으로 만드는 건 이 이야기를 깊게 알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2. 한때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이제는 한물간 선수들. 150km를 우습게 던졌지만 이제 140km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아이처럼 기뻐하고, 그 기록을 위해 (예능에서) 굳이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 이미 승부욕이 만렙인 그들은 지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링 위에서 죽을 듯이 덤벼든다. 어느 순간 그들은 이게 예능이라는 걸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누군가의 심금을 울린다. 한때 내 유니폼 등판에 새겨졌던 그 이름을 다시 새겨야 하나 싶을 정도로.


3.PD는 이미 은퇴선수들이 체력적 문제로 감당하기 어려운 유격수, 포수 등의 포지션에는 독립리그, 대학생 등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아마추어들을 발굴하여 선정한다. 요즘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프로 입단 대세가 되어버린 요즘. 이미 늦어버린 이들의 간절함과 성장 또한 프로그램의 주요 요소이다. 이들은 평소라면 만나는 걸 꿈꾸기도 힘든 스타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그들의 옆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듣고 배운다. 그렇게 성장한 이들은 프로에 가기도 하고, 그곳에서 또 쓴맛을 보기도 하다.


4. 최강 야구, 최강 몬스터즈의 상대는 고등학교, 대학교, 독립리그 등 아마 야구팀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설 고교 야구의 인기가 프로야구 못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듣기는 했지만 그들을 실제 눈으로 보는 건 야구광이 나조차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전설들과 맞서서 대등한 경기를 한다. 승률 7할을 목표로 하는 몬스터즈의 선수들은 처음에 7할이 문제냐 전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겠다 큰소리쳤지만 실제 7할은 그들의 전부를 걸어야 할 수 있는 목표였다.

5. 리얼리티.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 한다. 그리고 이 스포츠 예능에는 은퇴선수들의, 아마 선수들의 간절함이 묻어있다. 그들은 진심으로 이기고 싶어하고 지는 것을 싫어한다. 진정성이다.


날 잡고 누워 몰아보기 하는 도중에 해설자가 한 이야기다. '아휴 이깟 공놀이가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냐' 맞다. 몬스터즈가 이기건 지던, 나의 내일에는 아무 변화도 없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꽤 많은 이들이 몬스터즈의 일거수 일투족에 마음을 쓰고, 기뻐하고, 화를 낸다.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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