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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pr 10. 2024

대구에서 가장 힙해지게 해주세요
| 무영당

‘서울의 대안이 되는 지역공동체’


뭔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냐 싶지만 꽤 오랫동안 나의 20대를 지배해 온, 사실 지금도 마음 깊이 숨겨놓은 내 오랜 꿈이다.

이제 어느 정도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으니 그냥 서울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지만 결코 내가 대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이다. 나는 대구가 좋고, 대구의 역사가 좋고, 대구만 가지고 있는 대구의 것들이 좋다. 이것들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이것들을 어떻게 오늘날의 문화로 재해석할 수 있을까는 아마 NGO 마케터로의 내 인생이 1막이었다면, 아마도 내 인생의 다음 스텝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말 나는 이것들이 좋다.


그 마음으로 무영당을 찾았다.

예전부터 꼭 와보고 싶었는데 사실 좀 늦었다.

멀리서 보이는 무영당 간판.


그리고 무영당,


무한한 영감이 당신이 되는 곳:


지금은 이렇게 그럴듯한 이름이지만 예전 무영당은 개성상인 출신 이근무(李根茂)가 1937년 대구부 본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에 건립한 일제강점기 일본 자본에 맞서 대구 최초의 민족자본으로 건립된 백화점이다.


처음에는 서점으로 시작한 무영당은 현 위치 5층 건물로 옮기며 백화점으로 성장했고, 당시 하루 5,000명이 이용하며 이비시야백화점,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과 경쟁하는 대구 3대 백화점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특히 무영당백화점 2층 전시장은 전시회나 음악회 등이 개최되어 시인 이상화와 화가 이인성, 동요 시인 윤복진 등 지역의 신지식인과 청년들이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이었다.


해방 이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사용되던 무영당은 철거 직전, 대구광역시에서 2020년 매입하여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근대 건축물로 지정하고, 역사적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시민공간으로 되돌려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그곳이 지금의 이 무영당이 되었다.


오른쪽의 샹들리에는 예전부터 달려있던 샹들리에라고 한다.


카페로 활용되는 1층.


2층은 팝업스토어로 활용되고 있다.




예쁜 옷



네 알아요!! ㅠㅠ



해질 무렵의 무영당 2층


아직도 세월의 흔적이 남은 돌계단



3층은 스튜디오예요

대구 사는 여러분 저 조명에서 사직 찍으려면 최소 시간당 십만 원이에요!!(지금은 공짜)


여기 밤에 불 들어오면 장난 없어요.



루프탑에 위치한 역사 공간.


나가기 전에 괜히 아쉬워서 한 컷 더..


내 커리어가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런 곳에서 이런 곳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오랫동안 한 곳에서 지역을 지켜왔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곳,

대구의 100년의 역사를 그대로 끌어안고 오늘을 버티며 우리의 내일을 이야기하는 곳.


괜히 커피 한잔하며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는데 

커피는 못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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