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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ug 09. 2023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하루하루 교토> 주아현 저


그날은 갑자기 비가 내렸다. 아라시야마의 대나무 숲을 거닐다 소나기가 쏟아졌고 우리는 길 끝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쏴아아아. 비는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커피를 주문하려 보니 오사카에서 봤던 그 응 커피다.(아라비카 %) 여기는 라떼가 맛있지.. 우리는 따뜻한 라떼한잔씩 시켜놓고선 그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바램과 달리 비는 그치지 않았고 우리는 그 카페에서 우산을 하나 샀다. %가 그려진 비닐우산. 그 우산을 고이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언젠가 보니 그 우산의 '%'가 'CVS편의점'으로 바뀌어있었다. 어디서 바뀐 것일까. 아내는 지금도 그 우산을 보면 속상해 한다.


사실 그렇게 교토에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 오사카에서 가는 길이 어려웠다. 기차를 타고, 교토 내에서도 계속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더위에 잘 들리지 않는 일본어에, 영어 못하는 사람들에. 사실 짜증 투성이었던 기차 안에서 교토에 내려 처음 맞이한 너넨자카 거리는 '어서 와 교토는 처음이지'라고 내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200년 전 메이지유신 당시의 거리로 뚜벅뚜벅 걸어들어온 나는 이 거리에 있었을 것 같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바람의 검심>을 너무 많이 봤는지도 모르겠다. 은각사, 금각사, 철학자의 길. 가는 곳마다 교토는 가장 예스러운 일본을 내게 보여주었다. <게이샤의 추억>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한 여우 신사는 내가 이 땅에 서 있는 게 맞는가 싶은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아라시야마의 대나무숲은 아마 평생을 잊지 못할 풍경일 거다. 거짓말처럼 나타난 카페와 세상에서 가장 맛있던 라떼. 그리고 우산.


내게 교토는 그렇게 각인되었고 언젠가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도시, 아니 이 책의 저자처럼 꼭 한번은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책은 아마도 나처럼 여행으로 들린 교토를 잊지 못해 한 달 살기를 감행해버린 저자의 교토 한 달 살기의 기록이다. 저자는 꼼꼼히도 교토 구석구석을 누빈다. 때론 유명 관광지를 찾기도 하고 때로는 하릴없이 카페 한구석에 앉아 교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어떤 날은 자전거를 타고 꼭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인 양 골목골목을 누비기도 한다. 그렇게 오매가매 눈 마주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그림 같은 거리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고양이와 눈 맞춤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저자는 교토에서의 기록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 카페는 이런 게 맛있고, 저기는 저런 풍경이 예쁘고, 이 거리에서는 꼭 이런 식으로 사진을 찍어야 해.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모습들이 예뻐서, 그가 카메라에 담아온 교토가 너무 좋아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머지 않은 미래에 꼭 다시 교토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엔 여행을 가면 무조건 삶의 깨달음을 얻거나, 무언가 대단한 걸 배워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여행 내내 꽉꽉 채워진 일정으로 정신없이 다니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하루를 보내고 숙소로 돌아 왔을 때도 지쳐서 잠이 들 뿐이었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와 어느 날 갑자 기 그곳에서의 추억이 스쳐 지나갈 때, 미치도록 그 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먹었던 음식들, 걸었던 길들. 하나하나의 그리 움이 모여 나를 강하게 잡아당겼고, 나는 그 순간 다음 여행을 떠날 채비를 했다. 처음 간 여행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두 번째 여행에서는 더 많이 보였다.(p.253)


교토를 다녀오지 않으셨다면, 다녀온 후의 그 교토를 잊지 못하신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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