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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ug 06. 2023

상대의 외투를 벗기는 방법

<정의감 중독 사회>  안도 슌스케 저

2020년 요미우리 신문에서 ’타인이 피해는 아랑곳 않고 멋대로 행동한 사람이 천벌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76%가 ’예‘ 23%가 ’아니오‘라고 대답했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건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1964년의 조사에 의하면 같은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 사람은 41%, ’아니오‘라 대답한 사람이 40%였다고 한다. 정의는 보상받고, 악은 벌을 받는다. 어릴 적 전래동화에나 나왔던 이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2020년에 더 늘어났다. 권선징악에 관한 믿음이 일견 바람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늘 정의도 보상받지 못하고 악인이 더 잘 사는 걸 꽤 많은 경우 목도한다. 물론 이는 도덕적으로 페어 하지 않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정의'의 기준도 사실 각자의 기준이다. 그리고 더 문제는 이를  뒤집었을 때 소위 실패한 이들을 도덕적으로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 소위 실패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는 (우리는 모르지만) 무엇을 잘못한 사람일까? 정의 이론의 모순은 여기서 출발한다.


사 이래 이렇게까지 갈라진 적은 처음이라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로, 진보와 보수로, MZ와 꼰대로 갈라져 각자의 자리에서 한치의 양보 없이 죽도록 싸운다. 인터넷이 가져온 익명성은 이 전쟁에 기름을 부었다. 꽤 힘든 작업이지만 그 진영에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이야기를 하나씩 듣자 하면 모든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정의’가 존재한다. 요즘은 이를 PC라고도 부른다. 


저자는 우리보다 앞서 일본에서 벌어진 이 양극화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정의'라 불리는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서로를 공격하는 무기가 어쩌면 우리 안에 내재한 분노의 문제는 아닌지 고찰하고 채 어떤 이들에게 해결되지 못한 심리적 문제가 '정의'라는 중독으로 옮겨가는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그리고 '정의감 중독'의 다섯 가지 유형과 더불어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지까지 전문가의 안목에서 설명한다. 다행히 책도 그렇게 긴 호흡이 아닐 뿐더러, 번역서임에도 문단은 쉽고 간결하게 읽힌다.


그는 권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분노를 ‘긴 안목으로, 나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공감받을만한 건전한 것인가’ 되돌아 보라고. 이 네 가지 질문에 하나씩 대답할 때 우리는 자신의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이솝우화 ’해와 바람‘을 들어 분노를 해결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권한다.


해와 바람이 내기를 했다. 누가 먼저 행인의 외투를 벗길 것인가? 바람은 행인을 향해 차가운 바람을 쏘아 붙였다. 바람이 강할수록 외투가 날아갈 거라 믿었다. 이것이 정의, 정론의 힘이다. 행인은 더 옷깃을 여몄다. 해는 오히려 따뜻한 바람으로 행인을 녹였다. 행인은 결국 외투를 벗었다. 결국 우리가 누군가를 설득하는 방법은 옮고 그름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정의감과 분노를 앞세워 타인을 바꾸려 하지만 지나온 과거와 타인은 바꿀 수 없다고. 과거에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사건에 대한 해석과 내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다고. 결국 바꾸어야 할 것은 타인이 아니라 그를 대하는 내 태도라고.


익명게시판, 댓글 창을 보기도 무서운 세상이다. 이제 우리가 인터넷이 없는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희망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넘치는 정의감이 그 희망은 아닌 것 같다. 이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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