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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ug 10. 2023

가난할 용기와 외로울 용기를 가진 시인

<헤세 :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정여울 저

헤르만 헤세. 어릴 때 멋으로 읽은 <데미안>을 제외하고는 사실 헤세의 저작을 잘 알지도 못했는데, 그 알 이야기가 좋아서였나 어릴 적부터 헤세를 좋아했다(아니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학부시절 교양으로 다시 읽은 <데미안>은 꽤 새길만한 책이었으며 이어 <싯다르타>를 읽으며, 또 그가 어떤 글을 썼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헤르만 헤세.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에 따른 무성한 뒷이야기. 그리고 평생을 따라다닌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맞선 사람. 학교로부터 아버지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쳤지만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사람, 목회자가 되고 싶었으나 시인으로서의 삶도 포기하지 못했던 사람, 1차 대전에 자원 입대했으나 군무 불능 판정을 받고 포로 후생사업에 가담하나 결국 극단적 애국주의를 비평하여 독일문학에서 퇴출 당한 사람. 하지만 이 모든 걸 끝내 이겨내고 헤르만 헤세 자기 자신으로 살았던 사람.

책의 초반부는 칼프, 마울브론, 괴핑엔, 바젤, 가이엔호펜, 베른, 루체른, 몬타뇰라 등 여행자이자 방랑자로 살았던 헤세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헤세도 헤세지만 정여울 작가의 글도 좋아하는데, 좋은 글을 쓰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헤세가 살았던 보덴 호수를 거닐던 헤세의 모습이 그려진다. 자유롭고 싶었지만 자유로울 수 없었던, 고향을 떠나고 싶었지만 고향의 그림자를 안고 살았던, 방랑하면서 안주를 꿈꾸고 안주하면서도 방랑을 꿈꿨던 헤세의 인간적인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헤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문득 헤세와 같은 지점에 서 있는 자신을 만난다. 이는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깊이 한가득 욕망을 안고는 겉으로는 아닌 척한다. 고귀하고 순결하며 높은 이상을 가진 척한다. 그런데. 헤세는 가장 솔직할 때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것, 아니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을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헤세는 행복을 이렇게 정의한다.

우리가 행복을 '성취의 결과물'로만 생각한다면 마침내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의 허탈감을 견디지 못한다.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정을 이룰 것인가가 중요하듯 이 말이다. 소망의 성취는 행복의 본질이 아니다.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를 매 순간 고민하며 조금씩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 이 되고자 하는 열정을 잃지 않을 때, 행복은 '나른한 포만감'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p.37)

책의 후반부는 헤세의 저서 <데미안>과 <싯다르타>를 통해 그가 깨달은 구원과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헤세는 일상의 자잘한 기쁨, 생활의 사소한 걱정거리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는 「어떤 소설을 읽고」라는 산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큰 일에는 진지하게 임하면서 작은 일에는 무관심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몰락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고. 인류는 존중하지만 자기 하인은 괴롭히는 사람들, 조국이나 교회나 당은 숭배하면서 일상의 자잘한 일은 거칠고 소홀하게 다루는 태도, 거기서 붕괴는 시작된다고.(p.47)

헤세는 자연을 사랑했다. 그는 가장 작고 사소한 것을 아끼고 집중했다.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가난할 용기’와 ‘외로울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갔다. 그는 평생을 우울증과 방황 속에 살았지만 결국 그 알을 스스로 깨고 나왔고, 평생을 구도자의 삶을 살았다. 사랑, 구원, 절망 등 그가 평생을 사랑하고 싸워온 것들과 그는 결국 화해한다. 정여울 작가가 해석한 <싯다르타>를 다시 읽으며 헤세의 삶을 돌아보았고 이 책의 제목을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라는 제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런 책은 아무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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