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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Sep 02. 2023

당신의 몸은, 당신을 말하고 있나요?

<베테랑의 일> 희정 저 / 최형락 사진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영화 <베테랑>의 명대사는 곱씹을수록 베테랑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공무원이 감히 가질 수 없는 돈을 권하는 이들에게 베테랑 형사는 쿨하게 형사의 가오를 말한다. 형사의 자존심,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형사만이 부릴 수 있는 곤조. 나는 이 말이 참 좋았다. 멋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시간에 처음 읽은 수필이 아마도 '방망이 깎던 노인'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 노인은 방망이 깎아서 대단한 회사를 세운 이가 아니다. 그저 시장 구석에서 묵묵히 방망이 깎는 일에 평생 바친 노인. 어떤 이의 기준에는 실패한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소위 공부를 처음 시작하며 들었다.

그때만 해도 낭만이라는 게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장인, 베테랑이라 불리며 어떤 환경에서건 언제나 그들의 일을 하는 이들을 세상은 존경했고 인정했다. 요즘은 어떤가? 빨리빨리의 시대에 수익이 없는 열심은 그저 헛것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베테랑은 스스로를 칭하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베테랑이라는 그 호칭은 스스로가 부여할 수 없다. 모두는 아닐지언정 그 업에 함께하는 이들에게 실력과 시간 모두를 인정받아 불려야 한다.


저자가 만난 이들은 자신들은 손사래 치치만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베테랑이라 불리며 그 업에 대해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이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이 무명이며,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굽은 등과 손바닥의 굳은 살 그리고 소위 연장을 잡을 때의 아귀의 그립은 그들이 평생을 통해 그 업에서 쌓아온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에게 말해준다.


꽤 두꺼운 책은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사진으로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며 사실 생각이 많아졌다. 책의 제목은 '베테랑의 몸'이다. 사진 속 시간이 켜켜이 쌓인 그들의 몸은 그 일에 최적화 되어 있었다. 아니 시간은 그렇게 그들의 몸과 마음을 세공사로 조리사로 혹은 여기 나오는 모든 직업으로 만들어 갔는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보이는 몸만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이들. 나의 몸은 어떠한가?

저자는 묻는다. 베테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베테랑은 내가 아니라 우리가 일한다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_세공사 김세모

베테랑은 자존심 지키며 일하는 사람_조리사 하영숙

베테랑은 내 안전 내가 지키는 사람_로프공 김영탁

베테랑은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사람_어부 박명순, 염순애

베테랑은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_조산사 김수진

베테랑은 자기 일에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_안마사 최금숙

베테랑은 말을 이해하는 사람_마필관리사 성상현

베테랑은 내 몸 다치지 않게 일하는 사람_세신사 조윤주

베테랑은 준비를 열심히 하는 사람_수어통역사 장진석

베테랑은 내가 하는 일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_일레스트레이터/전시기획자 전포롱

베테랑은 나에게 올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하며 사는 사람_배우 황은후

베테랑은 수많은 활자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사람_식자공 권용국


2010년에 입사했고, 사실 월급이란 걸 받은 건 2009년부터니 이미 나도 사회복지사 혹은 NGO 마케터라 불린 지 15년이 지나고 있다. 운이 좋아서 가끔 후배들에게 이렇게 일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떤 프로젝트는 매니저로 어떤 프로젝트는 멘토로 참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내 업에 베테랑이냐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직도 아니요다. 여전히 출근이 싫고, 내세울 레퍼런스가 없으며 무엇보다 나를 그렇게 불러줄 동료가 많은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만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해온 말.

'되면 하자' 처음에는 우스개로 꺼낸 말이 이제는 나를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그래 되면 하자. 안되면 못할지라도.


베테랑들은 참 이 말을 좋아했다. "그냥 하는 거죠" 다만 열심히.

노동이라는 것은 냉정하여 무엇이건 지키고자 한 다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찰나의 성과도 특별한 것 없 어 보이는 기술도 대가 없이 내주지 않았다. 시간을 내놓은 베테랑들은 둥근 달과 함께 퇴근해야 했고, 굳은 살이 박혀야 했고, 눈물을 머금어야 했고, 살이 벗겨져 야 했고,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오래 한자리에 붙박였다.(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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