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짱고책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고아빠 Sep 01. 2023

좋은 글의 풍경

<헤아림의 조각들> 임지은 저

헤아리다[중요]


[동사]

1. 수량을 세다.

2. 그 수 정도에 이르다. 비교적 많은 수에 이르는 경우를 말한다.

3. 짐작하여 가늠하거나 미루어 생각하다.

[유의어] 계산하다, 내다보다, 넘겨다보다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헤아림'의 정의다. 이 책이 수학 책일 리는 만무하기에 당연히 짐작하여 가늠하거나 미루어 생각하다. 의 헤아림만이 이 책에 그려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읽으며 알았다. 이런 것조차 나의 편견일 수 있음을.


어쩌다 리뷰하는 채널을 운영하게 되면서 책을 읽을 때 이 책은 이런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책은 도무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갈피가 안 잡히는 글이 있는데 이 책이 딱 그랬다. 좋은데, 어떻게 좋은 걸 좋다고 표현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글. 그래서 나는 그의 첫 번째 책도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타인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하면서도 자신에게만큼은 누구보다 관대한 이들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이제는 고유명사처럼 되어버린 '내로남불'의 현장에서 우리는 울컥거리지만 사실 한 걸음만 뒤에서 생각해 보면 그 찰나의 순간이 곧 나의 순간이었던 적이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부끄러워졌는지.

솔직함에서 묻어 나오는 진중함은 당할 수 없다. 이 책의 모든 글타래에는 그 헤아림이 묻어있다. 타인을 향한, 어떤 환경이나 사물을 향한, 조금은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을 향한. 


타인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은 항상 상대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곱씹으며 깊어진다. 그의 사정과 마음을 헤아리며 그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묻고 또 묻는다. 그 시선이 따뜻해서 자꾸만 그의 글을 만졌다. 마음이다. 그는 그 모든 순간을 정말로 헤아린다. 어떨 때는 그 수를 세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그 마음을 세다가 그에게 이르기도 한다. 그 조각들이 너무 예뻐서 책을 읽는 내도록 좋았다. 그리고 또 나는 내가 아는 ‘글 잘 쓰는 사람’ 리스트에 ‘임지은’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추가했다. 고마웠다. 단 몇 개의 문장으로 나의 마음을 또 몽실하게 만들어주어서.


책에는 내 이름이 쓰이겠지만 그 옆에는 쓰이지 않은 수많은 이름 역시 함께 있다. 그 이름들은 언젠가의 해변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바다에 들어가기보다는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으며 바다를 보기 좋아한다. 모래는 부드러우면서 까슬하다. 건조하면서도 축축하고, 뭉쳐 지다가도 쉬이 흩어진다. 때론 성가시게 몸과 머리에 들러붙는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그것들이 만들어낸 풍경이 눈부시게 반짝여서, 나는 홀린 듯 해변에 앉아 한 줌의 모래를 헤아린 적이 있다. 어디에선가 밀려든 각기 다른 수많은 조각을 하나하나 세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다 보면 어떤 걸 알게 될 거라는 듯이. 아무리 헤아려도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나는 나 역시 그 풍경의 일부분인 게 좋았던 것 같다.(p.248)


그녀의 마지막 말이다. 그러고 보니 좋은 글을 읽고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이 풍경도 꽤나 마음에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 잘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