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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Oct 06. 2023

공감이라는 능력

<아몬드> 손원평 저

1.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있던 책인데 이제야 집어 들었다.(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베스트에 오른 책은 언제나 뒤로 미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소설은 성장소설이다. 그 시기에만 겪을 수 있는, 채 자라지 못한 마음과 감정들은 어느새 마흔이 되어 버렸지만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돌아올 수 없는 날의 애틋함일지도, 그때 그랬더라면 이라는 후회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 삶의 모든 순간이 그랬다. 치열하게 그렇게 산다도 생각하는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내일의 나 또한 어딘가 아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나는 공감 능력이 뛰어나’라고 주로 F 계열의 인간들은 말한다. 감정적인 것과 공감 능력은 꽤 다른 범주인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 둘을 섞어 쓴다. 공감이라는 건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가 겪을 감정에 대해 이해하고, 상대가 겪을 부정적 감정을 줄여줄 때 비로소 능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된다.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할 수 있고, 슬픈 일은 함께 슬퍼할 수 있다. 이건 쉬운 일이다. 그런데 공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상대가 기쁜 일을 겪을 때 내 일처럼 기뻐하지만 그가 그 일을 상대가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면 잠시 참아주는 것이 공감이다. 상대가 슬픈 일을 당할 때, 나의 어쭙잖은 위로가 그의 슬픔을 배가 시킨다면 입을 다물어 주는 것이 공감이다. 상대가 어떤 행동에 힘들어 한다면 ‘힘들지?’라고 말하며 토닥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게 나의 행동을 참거나 상대의 고통에 함께 싸워주는 것이 공감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이 공감 능력을 잃어버렸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을 잃어버렸으면서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아몬드’라 불리는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윤재의 가족이 묻지마 살인에 의해 희생당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끔찍한 일을 당하고도 별 감정의 동요 없이 등교하는 (그래서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는) 윤재. 어느 날 그 앞에 곤이가 나타난다. 어릴 적 부모와 떨어져 자란 곤이의 삶은 분노로 가득하다. 문제아, 일진.. 모두가 다양한 수식어가 달린 곤이를 피하는데 유독 윤재는 곤이 앞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약이 오를 데로 오른 곤이는 윤재를 괴롭히지만 그럴수록 곤이만 곤란할 따름이다. 평범하지 못한 두 아이는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방법으로 가까워진다. 서로에게 없는 것을 배워가며, 과한 것은 조금씩 눌러가며. 둘은 처음으로 우정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


4. 저자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 그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철저하게 혼자였던 윤재와 곤이는 어느 순간 서로의 모습을 닮아가며 조금씩 변한다. 둘에게 결여되어 있던 공감이라는 능력은 윤재에게 곤이가 느끼는 외로움을 알게 했고, 곤이에게 표현하지 않지만 윤재의 진심을 보게 했다. 그렇게 둘은 자신을 희생하며,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자랐다. 아마 둘은 그렇게 어른이 될 것이다. 서로를 만나기 전보다 훨씬 좋은 어른.


5. 문득 나는 어떤 어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있는가, 누군가의 아픔을 그저 무미건조하게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의 불편을 원래 그런 거라며 쿨한척하며 넘겨 짚고 있지는 않은가. 처음 공감을 배워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묘하게 내가 오버랩되며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늘 헷갈렸던 치기 어린 내 어린 날이 떠올랐다. 좀 더 일찍 이 책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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