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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Dec 31. 2023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하는 우리의 시간

<전지적 푸바오 시점> 에버랜드

'행복을 주는 선물'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판다. 23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푸바오의 이야기다. 에버랜드를 먹여살린 판다, 그 어렵다는 더현대 팝업스토어를 열어 버린 것도 모자라 뜨겁게 달궈버린 판다. 좀 나쁘게 말하면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리는 책이 있을까. 푸바오의 팬들에게는 아주 멋진 굿즈가 나왔다.


푸바오의 사육사, 지금은 송바오로 불리는 작가가 쓴 푸바오를 위한, 푸바오를 향한, 푸바오에 관한 책이다.

푸바오를 몰랐다면 푸바오 관련 유튜브를 서너 개 보고 책을 읽기를 권하며 혹시 푸바오를 이미 사랑하고 있다면 기분 좋게 읽고 넘길 수 있는 책이다. 휘휘 저으면 30분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인데 여느 반려인이 다 그렇겠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도록 우리 집 고양이 짱고가 그렇게 눈에 밟혔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관심은 어떤 형태의 기록으로든 남을 수 밖에 없다. 휴대폰 사진을 선호하지 않는 나이지만 휴대폰 사진첩에 그득한 우리 집 고양이의 사진들이 아마 내가 이 놈의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증명해 주는 것 같다. 


10년에서 15년을 산다는 고양이의 수명.(물론 요즘은 15년에서 20년까지도 산다지만) 2014년 생인 짱고도 이제 10살이 되었고 객관적으로 노묘가 되었다. 심지어 2년 전부터는 HCM이라는 심장병약까지 매일 복용 중이시다. 기분 탓이겠지만 언제고 똥꼬발랄할 줄 알았던 고양이가 언젠가부터 잘 누워있고, 움직이지 않으려 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으면 한순간 마음이 멎을 때가 있다. 저렇게 영원히 내 곁을 떠나버릴까 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에서 툭툭 건드려 보면 귀찮다는 듯이 양팔을 휘휘 젓고는 다시 식빵을 굽는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듯이 이번엔 코까지 새근새근 골아대면서. 


푸바오는 한국에서 태어난 자이언트 판다지만, 해외에 거주하는 모든 판다들은 중국에서 대여된 형태라 푸바오도 결국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단다. 23년 8월부터 푸바오의 반환 협상이 시작되었는데, 한국 뿐 아니라 중국의 모든 푸바오의 팬들마저도 푸바오가 에버랜드에서 한국인 사육사와 함께 지내길 원하지만 결국 24년 3월 푸바오는 중국으로 가기로 결정된 모양이다. 얼마 남지 않은 푸바오의 시간. 


강신주 박사의 <감정수업>에 그는 반려동물을 키워야 하는 이유로 상실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사람보다 생이 짧은 반려동물을 기른다는 건 결국 그 동물과의 헤어짐을 한번은 경험해야 하고, 그 경험이 그 후에 있을 더 큰 헤어짐에 대한 예방주사가 될 수 있다는 지점인데 그의 말에 크게 동의하지만 작든 크든 헤어짐은 아직 내겐 너무 아프고 싫은 감정이다. 내 고양이를 그가 떠나왔던 별로 돌려보내야 할 시간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그 시간이 가급적 늦었으면.. 아니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지금도 코를 드르렁 골며 거실 바닥에서 주무시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싱숭생숭거린다. 괜히 들쳐업고 꼭 안았더니 싫단다. 바둥거리는 녀석을 놓어주니 양발을 툭툭 털고는 이내 제가 있던 자리와 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 꿈뻑꿈뻑. 길게 눈인사를 보내곤 다시 눈을 감는다. 2023년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그래 아직은 우리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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