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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Jan 01. 2024

세상의 모든 조별 과제를 이겨내는 힘

<집단의 힘> 박귀현 저

2년이라는 짧은 시간. 현역과 복학생의 삶은 그렇게 다르다던데 나의 경우도 그러했다. 2001년만 하더라도 빔프로젝터와 PT는 매우 고오급 기술 중 하나였다.(심지어 강의 때 이걸 하려면 행정실 같은 데서 대여해야 했다!!) 그런데 전역 후 돌아온 캠퍼스에는 거의 모든 강의에 빔프로젝터가 활용되고 있었고 비싸게만 느껴졌던 노트북은 대학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PT 능력은 기본 소양이 되어있었고. 어른들의 말이 옳았다. 세상은 변했다.


사실 이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꽤 신나게 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적응을 하지 못했던 건, 지금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그 이름 '조별 과제'였다.


복학생이라는 이유로 나는 수업 첫 시간, 학번 혹은 교수님 마음대로 끊어지는 거의 모든 조에서 조장이 되었다. 처음 보는 조원들의 전화번호를 일일이 저장해야 했고 전화번호와 얼굴, 학과 등을 매칭 시키고 처음 만나는 5-6명(심할 땐 8~10명)의 조원들을 모아 과업을 정해줘야 했다. 발제 시 조사할 분량을 쪼개고, PT를 만들고, 발표자를 정하고(이건 보통은 나)도 남는 인원이 있을 때도 있다. 경험상 이 중에 20%는 잠수 혹은 기량 미달이기에 백업을 붙여야 하지만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런 머리를 굴리는 중 한 녀석이 PT를 넘기는 손가락도 인원으로 정하자고 해 따로 불러 크게 혼낸 적도 있다 후..). 여하튼 이렇게 과업을 쪼개고 나면 의례적으로 2~30%의 인원은 잠수를 타거나 누가 봐도 인터넷에서 긁어온 수준 미달의 과제를 제출한다. 심한 경우는 발표 하루 전까지도 연락이 되지 않고, 꽤 많은 경우 발표날 빵이나 커피를 가득 들고 나타나서는 (주로 누가 죽었거나, 정신이 없었다며) PT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줄 것을 읍소하는 경우도 있다. 아예 대놓고 조원이 정해지는 날 점심을 거하게 사며 자기가 얼마나 바쁜지와 함께 본인은 묻어가겠노라 하며 허허 웃으시는 만학도님(주로 목사님..)들도 갑자기 떠오른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면 조별 과제 따위 다시는 없을 줄 알았다. 반전은 여기서 시작되는데 이 모든 조별 과제를 이겨내고 입사한 회사란 곳에서도 이 '조별 과제'가 매일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딘가 사라졌다 결정적일 때 나타나서는 실적을 나누길 요구하는 무임승차자, 늘 혼자 열심이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혼자 뛰어가는 열심이, 모두의 엔빵만이 공정이다 말하는 공정이.

거기다 회사라는 집단은 조직 이기주의까지 더해져, 개인을 넘어 한 조직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도 추가된다. 갑자기 떨어지는 과업이 이 팀과 저 팀 사이를 오가다 그만 땅에 떨어져 버리는 일, '00를 묻기 위해' 건 전화가 이 팀과 저 팀으로 오가다 그만 끊어지고만 경험들, 아마 회사라는 조직에 속해봤으면 누구나 한 번쯤 하는 이러한 경험에 절망하던 찰나. 대학 때야 수강 취소하면 그만이라지만 미치고 팔딱 뛰는 팀이라는 구조의 대환장 파티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고민하던 차에 이 모든 조별 과제에 대답하는 책이 나왔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굉장히 뛰어난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우리는 회사라는 조직에 속하게 되고 그 안에서 각자의 팀으로 배정된다. 티 안에서 혹은 팀끼리, 나아가 회사끼리 우리는 수많은 의견을 주고 받고(때론 치고 받고), 수많은 인간들을 만나며(싸우며) 그렇게 성장(혹은 퇴화) 한다. 책은 그 조직 안에서 개인과 집단이 어떻게 하면 더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꽤 많은 실험과 경험들을 가지고 설명한다. 어떤 부분은 조직심리학 수업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지금 당장 내 문제이기도 해서 꽤 꼼꼼히 들여다 보기도 했다. 어떤 챕터는 이제는 팀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로 역할이 주어지며 어떻게 함께 나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개인적 고민의 대답이 되어주기도 했다.

나아가 저자는 이렇게 하라는 충고에서 멈추지 않고 책은 집단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작용에 대한 경고도 멈추지 않는다. 집단 허울, 집단 차별, 다수의 횡포,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 사이의 딜레마 등 다양한 이슈 발생 지점에 서 저자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멈추고 더 좋은 방향으로 사고할 것을 권한다.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니까.


새해에 다양한 과업들을 받은 사람도, 새로운 목표를 사진 이들도 있을진대 추천할 법한 책이다.

24년에는 우리 팀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지려나. 아직은 기대보단 걱정이 앞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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