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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Jan 03. 2024

당신은 목격자인가? 구경자인가?

<고통 구경하는 사회> 정인정 저

제목은 강렬했고, 함부로 읽어서는 안될 책 같았다. 연말연초로 이어지는 긴 연휴. 꽤 오랜 시간 붙잡고 꼬깃꼬깃 따박따박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었다. 후. 책을 읽으며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겨우 책을 읽어내고 난 이후의 나와 그 전의 나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타인을 위해 오늘을 산다 말하며, 심지어 지구 반대편의 어떤 부분의 치유를 위해 일한다고 말하는 나는 지금 우리 사회를 목격하고 있는가? 구경하고 있는가?


목격은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고, 구경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일이다. 둘 다 보는 일이지만 목격이 가치중립적이라면, 구경할 때 눈은 흥밋거리와 관심거리를 찾는다. 실시간으로 참사가 벌어지던 때, 이태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검색하던 사람들이 피할 수 없었던 '불편한' 이미지들은 무엇을 보여준 걸까?(전자책 p.29)


모두가 카메라를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 모두가 찍고, 모두가 그것을 공유하는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는 이전에는 차마 보지 못했던 고통스러운 장면들이 쉽게 목도하게 된다. 이는 어떤 사건, 사고에 관한 이미지가 아니다. 구걸하는 사람, 폐지 줍는 노인, 폭력에 노출된 아이, 크레인에 올라야 하는 노동자들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위한 투쟁을 하며 오늘을 버티는 이들을 누군가의 카메라는 담아내고 공유한다. 우리는 처음에는 이 이미지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고통을 '목격'했던 이들은 머지 않아 이 고통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누군가는 고통을 팔았다. 고통은 콘텐츠가 되었고, 돈이 되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또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과 죄책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무력감을 이겨내기 위해 그 고통의 가해자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들은 정의감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했다. 그렇게 그들은 고통으로부터 도망갔다.

계속하여 진화하는 SNS는 사람들이 이 고통으로부터 도망갈 길을 열어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리즘이라는 툴을 이용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지금 당신의 인스타 검색창을 열어보라. 처음 보지만 익숙한 이미지, SNS는 그것이 당신은 취향이고 당신의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회를 살아가며 언젠가부터 객관적 시선이라는 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우리는 의도를 가지고 찍힌 사진을 의도를 가지고 본다. 찍는 이와 보는 이. 두 번의 가해를 당하지만 정작 피사체인 이들은 누가 자신을 찍고 누가 자신을 보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관음증에 대해 고발한다. 아닌 척하면서도 '구경'하고 있는 우리의 약함에 대해 꽤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아프리카를 다니면서 아프리카 아이들의 사진을 꽤 많이 찍는다. 물론 대부분 허가 받은 촬영이지만 한국에 돌아와 그 사진들이 함부로 이용되는 것에 대해 별수 없다는 걸 알지만 꽤 마음이 무겁다. 누군가는 이를 빈곤 포르노라 부르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무거운 이야기 끝에 우리게 요청한다. 알고리즘과 구독에 갇힌 타임라인 밖으로 나아가, 진짜 우리 곁의 사람의 온기, 타인의 존재를 알아차리라고. 지금 이 땅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그대로 인지하고, 나와 연관되지 않은 일 또한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그리고 그는 희망을 본다. 이러한 태도가 행동으로 당장 변화되지는 않을지언정 이제 우리는 변화의 가능성을 태동하고 있다고.

  

2023 우간다(좌) / 2017 에티오피아(중간) / 2016 스와질랜드(우)


지난 아프리카 출장 사진을 괜히 다시 꺼내보았다. 빈곤 포르노라 불릴 정도로 처절한 사진도 있지만 반면에 세상에서 가장 밝은 아이들의 모습도 함께 담겨있다. 누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가. 그가 담고자 하는 것은 '목격'인가 '구경'인가. 꽤 오래 카메라를 들어온 사람으로 카메라를 멘 어깨가 조금 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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