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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Jan 04. 2024

당신은 오늘 아침 나선 그 문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가?

<당신의 세상은 불안하다> 선이정 저

1.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대문을 나서며 오늘 저녁 별일 없이 다시 나섰던 그 문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도 그랬다. 언제나처럼 현관을 나선 엄마도 당연히 돌아올 줄 알았다. 15살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교통사고가 있었고 엄마는 그 문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오늘도 그저 그런 평범한 하루일 거라는 믿음이 무너지던 날. 일상이 깨어지고 우리 가족의 삶이 꺼져버린 날. 그날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한 걸음씩 찾아오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순간에 훅 우리 모두의 삶을 깨고 들어왔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하루를 시작했고 지금도 그 삶을 살고 있다.


2.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사랑스러운 드라마를 보며 엉엉 울었던 것도 아마 이런 이유일 것이다. 에피소드마다 주인공들은 어느 날 갑자기, 피할 수 없는 곳에서 깨어짐을 만난다. 사무실에 함께 앉은 동료의 얼굴에서, 매일 나를 짓누르는 공부의 무게에서, 응답하지 못한 한 통의 전화에서 인생은 무너지고 마음은 고장 나 버린다. 이 드라마에서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들의 옆에는 항상 그 고장 난 마음을 함께 끌어안고 울어주는 가족, 친구, 사회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이 드라마가 '드라마'인 이유이기도 하다.


3. 이렇듯 당신의 세상은 불안하다. 책은 이 조금은 두려운 선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챕터마다 하나의 이름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일 수도, 혹은 낯선 이름일 수도 있다. 이 이름의 공통점은 어느 순간(혹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유도 모를 깨어짐에 부딪힌 이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지구마을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시리아 난민, 홍콩 우산 혁명, 인도 파키스탄 분쟁, 미투 등. 어쩌면 우리는 이 깨어짐을 이미 알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사례들을 SNS에 공유하며 함께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라도 이내 이 깨어짐을 오늘 저녁 9시 뉴스 끝자락에 잠깐 등장하는 에피소드 정도로 잊어 버린다.

혹 더 나아가 이러한 일이 있노라 길에서 목놓아 외치는 이들에게는 '별나다'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심한 이들은 주머니에서 몇 푼 꺼내고선 이것이 필요한 것이었냐며 비웃기도 한다. 그렇게 모두가 착각 속에 살아간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의 세상은 안전하다고.


4. 당신은 당신의 오늘이 평범하게 마무리 될 것이라 자신하고 있는가? 그 삶은 정의롭고, 평탄하며, 안전할 것이라고 그렇게 장담할 수 있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불합리와 부정의, 사건과 사고, 멀리는 전쟁과 기근, 자연재해의 소식이 나를 비켜갈 것이라고 그렇게 당신은 말할 수 있는가. 오늘 대한민국에는 말도 안 되는 추위가 들이 닥쳤다. 당신은 이 추위를 피할 수 있는가.


5. 나는 두렵다. 물론 대부분의 삶을 따뜻하게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삶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질까 두렵다. 그래서 나와 같은 이들을 찾고 그들과 손 잡는다. 맞잡은 손의 온기가 전해질 때, 마주 잡은 이 손을 놓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맞닿을 때, 나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누군가 채워줄거라는 신뢰 그리고 연대. 이 가치는 이제 내게 아주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내가 딛고 선 자리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나 살자고 나와 손잡고 있던 이들을 내가 버려둔 것은 아닐까. 꽤 깊이 있게, 꼼꼼히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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